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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다함께> 16호(2002-09-01 발행)
헤드라인 : 미국의 이라크 전쟁, 시작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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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영화평 -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 세계의 범죄 예방

정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블록버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인기리에 상영중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미래의 범인을 체포하는 SF소설이다.

톰 크루즈는 서기 2054년 워싱턴 D.C의 형사 존 앤더튼을 연기한다. 앤더튼은 특수경찰반 프리크라임(Precrime)의 반장이다. 그와 동료들은 세 명의 예지자들의 도움을 받아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미래의 살인범을 체포한다. 그래서 미국의 수도는 살인 사건이 사라진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저지를 사람들을 체포한다. 게다가 체포한 뒤에는 재판도 없이 끔찍한 상태로 감금한다.

앤더튼 자신이 ‘살인 예정범’으로 지목될 때까지 이런 문제는 무시된다. 영화는 이제 무고한 한 남자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고전적인 헐리우드 내용으로 흐른다.

영화 내내 우리는 미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도심 곳곳의 광고판들은 행인들의 망막을 스캔해 개인 정보를 파악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맞춤 광고로 유혹한다. 여기저기서 끝없이 망막이 스캔된다. 그래서 수배자는 불법으로 타인의 눈을 이식해야 체포를 면할 수 있다.

경찰들은 앤더튼을 잡기 위해 빈민가를 뒤진다. 빈민가는 앤더튼이 살며 일하는 첨단의 도심과 대조된다. 그 곳에는 첨단 테크놀로지가 없다. 경찰들은 미래의 경찰 거미로봇들을 풀어놓는다. 이 로봇들은 건물 안 곳곳을 기어 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내고 망막을 스캔해 신분을 확인한다.

이 모든 것들은 미래 세계의 범죄 예방 시스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와 FBI는 테러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들을 감금하고 있다. 다른 점은 지금 FBI에게는 세 명의 예지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FBI는 피부색과 출신 국가를 보고 미래의 테러범들을 지목한다.

스필버그는 부시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리고 허점 투성이의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중반부까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유지한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경찰들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가두는 장면들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오르게 한다. 생각이나 무의식까지 범죄가 되는 사법 제도는 두개골 넓이만큼의 자유도 용납하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영화 속 2054년 미국의 프리크라임과 현실의 2002년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기막히게 닮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과학기술의 진보는 부유한 세계에 한정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미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가난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첨단 테크놀로지가 동원된다. 과연 이것이 미래일까?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감시하느라 인터넷 감시, CCTV, 휴대폰 위치 정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다른 SF 영화들처럼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오늘날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러나 큰 기대는 말라. SF 영화는 대개 함축적이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스필버그는 부시를 두둔했고 줄거리도 꼭 <미션 임파서블> 같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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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용카드 제국≫ - 로버트 D 매닝, 참솔

김덕엽

신용카드 발급이 1억 장을 넘어섰다.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한 사람당 신용카드 4.69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자신들이 1억 장이 넘는 카드를 발급하기까지 “내게 힘을 주는 카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 등 현란한 광고를 내세워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겼다. 정부 역시 신용카드 사용이 투명한 경제의 척도인양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빚 때문에 일어나는 범죄가 연일 신문ㆍ방송에 오르내리자 선진 시민의 결제 수단이던 신용카드가 허영과 탐욕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돼 버렸다. 신용카드 회사들도 광고에서 절제를 모르고 신나게 카드를 긁어대던 연예인을 갑자기 신용카드 사용을 절제하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언론은 신용카드 회사들의 카드 발급 조건을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나름의 해결책을 내 놓았다. 그렇다면 발급된 신용카드가 15억 장이 넘는 나라, 한 사람당 신용카드 10장을 갖고 있는 나라 미국은 신용카드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경제사회학자 로버트 D. 매링은 미국 내에서 15년 동안 수백 명과 한 인터뷰와 1980년대 경제 상황을 분석해 ‘최초의 신용카드 분석서’인 ≪신용카드 제국≫을 펴냈다. 매링은 이 책에서 신용카드 빚 때문에 자살한 자녀를 둔 부모와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한 개인을 단순히 과소비꾼으로 몰아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언론과 정부의 위선을 폭로했다.

저자는 신용카드 때문에 쌓인 빚이 개인의 낭비벽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궁핍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고, 사회ㆍ경제 상황과 조건 때문에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점을 무시한 것임을 잘 지적했다. 매링은 이런 논리가 “신용카드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만기를 연장하는 회전결제 채무자에게 ‘징계 차원에서’ 높은 수수료를 물리고, 신용카드로 일시불 구매를 즐기는 부유층을 보상하는 신용카드회사를 옹호해주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가정 가운데 저소득층의 비중이 1983∼1995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시기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정부의 친기업 정책은 유급 휴가ㆍ 건강 보험ㆍ퇴직 연금 등을 삭감해 노동조건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매닝은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들의 신용카드 부채를 설명한다. 단순히 이윤에 눈먼 신용카드 회사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사장들도 신용카드 문제의 주범이라는 것을 밝히는 2ㆍ3ㆍ4장은 신선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서둘러 서평한 공병호는 저자의 시각이 “빈자와 부자의 대결과 갈등 구조로 세상을 바라 본다.” 하고 비판하고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또, 높은 연회비ㆍ수수료를 거부하고 카드 빚을 탕감시키려는 운동을 반세계화 운동과 연관지으려는 저자의 노력을 대안 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대안이 없어 보이는 쪽은 이윤 논리를 내세워 우리 삶을 파괴하는 자들이다.  

 

 

≪제국은 없다≫ - 조지 오웰, 서지원

이종길

≪제국은 없다≫(원제 : ≪버마시절≫)는 조지 오웰이 1922∼1927년에 ‘인도 제국 경찰’로 재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시간적 배경은 1920년대 중반이며, 무대는 영국 식민지인 버마의 한 읍 카우타다다.

카우타다에는 영국인들이 조직한 ‘백인클럽’이 있다. 이 클럽에 속해 있는 인물들은 주인공 플로리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버마인들을 매우 열등한 인종으로 여긴다. 클럽 회원 엘리스가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줄곧 노예인 저 저주받은 검둥이 돼지들을 지배하기 위해 우리는 이 곳에 왔소.” 하고 정말 혐오스럽게 말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반발하지 않는다.

주인공 플로리는 이들의 인종주의에 심하게 반발한다. 그는 버마인 친구 베라스와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문명을 주는 세력이라면 그것은 대규모로 강탈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오.” 그러나 그는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한 채 소외감에 빠져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국의 문예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플로리를 두고 사악한 사회 제도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또 그것과 결별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인간’이라고 평가한다.

주목할 만한 다른 한 인물은 버마인 하급 치안 판사 우 포 킨이다. 그는 영국에 기생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부패한 원주민 관료의 전형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입신 출세한 그는 베라스와미가 “음흉한 악어”라고 부를 정도로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소설의 커다란 줄거리는 버마인으로서 최고 명예인 백인클럽 회원이 되기 위해 우 포 킨이 베라스와미와 플로리를 점차 파멸시키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플로리는 우 포 킨의 음모와 계략에 휘말려 사랑하는 여인 엘리자베스에게 버림받고, 결국 큰 절망에 빠져 자살을 선택한다. 물론, 플로리의 사랑을 허물어뜨린 당사자는 우 포 킨이지만 우 포 킨 같은 인물을 낳은 건 바로 제국주의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랑을 파괴한 진정한 원흉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고한다.

이 소설은 쉽고 명징한 문체로 이루어진 오웰의 ≪동물농장≫과는 전혀 달리 화려하고, 유창하고, 섬세하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거대한 자연주의적 소설 ― 불행한 결말로 끝나고 미세한 묘사와 인상적인 직유로 가득 찬, 그리고 말이 소리 그 자체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 화려한 문장들 투성이의 자연주의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 사실 나의 첫 장편 ≪버마시절≫은 다소 그런 종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특히, 이 소설 내용의 독특함은 제국주의가 피지배자들뿐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에 속한 인간 개개인의 삶도 타락시키고 파멸시킨다는 점을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오웰이 작품을 쓰던 시기(1933∼1934년)에 스탈린의 문화 자객 츠다노프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교리를 공표했다. ‘사회주의’ 문학은 관료, 노동, 자기 희생에 대한 찬미를 주된 내용으로 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오웰은 스탈린주의에 반대한 독립적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전 세계 좌파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송두리째 억압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 소설은 필연적으로 선전주의적 편향에 빠져 문학성을 잃게 된다는 순수 예술지상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오웰은 독특한 개성과 문체가 묻어나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디 브라운, 나무심는사람

김용석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주로 1860∼1890년대까지 미국 인디언들에게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백인들에게 이 시기는 서부의 위대한 신화 ― 보안관, 총잡이, 기병대, 카우보이 ― 가 쏟아져 나온 시기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이러한 신화 이면에 담긴 진실을 말하는 가장 뛰어난 책이다.

1860년 3월 12일 미국 의회는 서부 지역의 주민에게 무상으로 땅을 제공하는 선점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마지막 장면은 서부의 광활한 대지에 자신의 깃발을 먼저 세워 땅을 차지하는 서부 개척 정신을 잘 보여 준다. 백인들은 용감한 개척 정신을 가진 사람이 땅을 차지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과연 그 땅은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아무도 살지 않던 땅이었을까?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들기 전까지 그 곳의 주인은 인디언이었다. 그들을 제일 먼저 만난 백인은 콜럼버스였다. 그는 인디언을 보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며, 말은 부드럽고 상냥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 이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훌륭합니다.” 하고 묘사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줬을 뿐 아니라 옥수수 경작법을 가르쳐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과 금을 노리고 달려들면서부터 학살이 시작됐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평화 협정”을 맺자고 때로는 감언이설로 속이고 때로는 무력으로 강요했다. 그 협정은 인디언이 자기 땅을 백인들에게 양보하고, 대신 백인들이 정한 보호 구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협정에 반대한 인디언들은 평화를 해치는 위험한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끔찍하게 학살당했다.

협정을 맺은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비참했지만 “바위가 녹아 내릴 때까지라도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협정을 어긴 쪽은 항상 백인들이었다. 백인들은 인디언 구역에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인디언들을 보호 구역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협정을 맺자마자 그 곳에는 백인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백인들이 약속한 보호 구역은 점점 좁아졌고 인디언들은 더욱 척박한 땅으로 밀려났다. 나바호족이 ‘보호’받던 곳은 “물은 검고 소금기가 있어 마실 수 없고 수용되어 있는 4분의 1이 질병으로 죽어”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바호족은 미국 인디언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비참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보호 구역에서 탈출한 인디언들은 협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냥당했다. 백인들에게는 “죽은 인디언이 좋은 인디언”이었다.

운디드니는 미국 인디언들에게 학살의 상징이자 저항의 성지다. 1890년 12월 29일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춘 망령의 춤(고스트 댄스)을 막기 위해 군대가 파견돼 운디드니 강 근처에서 항복해 무장 해제된 수우족 인디언 3백여 명을 학살했다. 여기에는 어린아이와 여자 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것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패배를 결정지은 사건이었다. 미국 인디언들이 사용한 아름다운 땅의 이름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이름을 처음 사용한 부족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아파치족은 불과 몇 사람만이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미국의 학살 무기 이름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인디언들이 역마차를 습격하고 머리가죽을 벗기는 사람들로 기억한다. 그러나 백인들이 외면한 굶주리고 남루한 백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돈을 나누어준 대추장 타탕가 요탕카(앉은소)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인디언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와 백인 존 롤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들어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8천여 명이던 포카혼타스의 부족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들에게 학살당해 1천 명 미만으로 줄어든 사실은 알지 못한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미국의 개척 정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국 인디언의 피를 묻히고 탄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789년의 대공포≫ - 조르주 르페브르, 까치

승녕

학교 다닐 때 배운 프랑스 혁명은 귀족들이 당한 수난의 이야기다. 우리는 학교나 책에서 수 천 개의 방이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매일 밤 무도회가 열렸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정작 혁명을 일으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무시됐다. 1780년대 앙트와네트가 매일 사치스런 도박을 즐길 때 도시 노동 대중과 시골 농민들은 빈곤과 공포 속에서 살았다.

빵 값은 1789년에는 1파운드(약 4백50그램)에 4.5수까지 올랐다. 도시 노동 대중의 임금은 기껏 30∼40수였다. 농민들은 더 힘들었는데 일당이 10수 이하인 경우도 많았다. 겨울에는 그 나마도 5∼6수밖에 벌지 못했다.

더구나 제3신분은 20분의 1세, 타유세, 십일조 등 갖가지 명목의 세금을 내야 했다. 소금세 같은 간접세를 합하면 그 부담은 훨씬 끔찍했다. 민중의 빈곤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대다수 민중은 부랑자가 되었다. 그들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식량을 구걸했다. 부랑자 가운데 일부는 비적이 되어 농민들의 곡식을 약탈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비적들을 두려워했다. 1789년에 이 공포는 프랑스 전역을 뒤덮는다. 이것이 1789년의 대공포다. 이 공포는 비적들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789년 농민들은 귀족들이 언제 음모를 꾸며 자기들을 학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프랑스 특권 계급의 요청으로 언제 외국 군대가 프랑스에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앙트와네트는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군대 5만 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공포는 빠리나 뤼페크 같은 거점에서 출발해 발달한 통신 수단을 통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대공포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통제불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공포 이면에는 특권 계급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민중은 가난할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구 체제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세금 한 푼 안 내고 숲에서 사냥을 즐기는 것에 민중은 불만을 가졌다.

특권 계급은 놀기만 할 뿐 사회에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그들은 사회를 지배했지만, 비적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민중은 더는 특권 계급을 존경하지 않았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귀족들의 집이 불탔고 귀족들의 곳간이 민중의 손에 넘어갔다.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봉기는 봉건 사회 자체를 위협했다. 바코네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교회에 내는 십일조를 거부했으며 그 외 봉건적 세금 모두를 거부했다. 교회와 귀족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대공포는 특권 계급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던 증오심을 심화하고 혁명 운동을 강화했다. 또한 민중이 경계심을 갖게 해 스스로 민병대를 조직하게 했다.

≪1789년의 대공포≫에는 파리 이외의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에서 농민이 한 역할을 주로 연구한 학자답게 지방에서 농민이 한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대공포라는 사건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프랑스 혁명 전반에 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이나 각 신분과 계급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대혁명사≫(두레출판사)를 읽어본다면 이 책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 소불의 책에는 상퀼로트(혁명 당시 도시의 노동 대중) 운동이 잘 나타나 있다. 두 사람의 책을 같이 읽으면 프랑스 혁명 때 계급 관계들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수많은 봉기를 일으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노동자와 농민들도 동참한 혁명이었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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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브라질 차례인가?

다음은 브라질 차례인가?

이수현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 이제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경제 위기의 가장 최근의 제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주에 최대 규모의 차관을 브라질에 제공했다. 그 목적은 지난 3년 동안 1930년대식 공황에 빠진 이웃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3백억 달러의 IMF 차관에는 브라질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을 훨씬 더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IMF는 브라질 정부가 공공 지출을 삭감해서 매년 총 생산량의 3.75퍼센트를 국제 은행과 서방 정부들에 넘겨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IMF는 차관의 80퍼센트를 내년까지 보류했다. 이는 10월로 예정된 브라질 대선의 승자를 압박하려는 의도다. 브라질이 직면한 위기는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이 겪고 있는 더 광범한 위기의 일부다. 이웃 아르헨티나의 실업률은 한 통계치에 따르면 40퍼센트이고, 인구의 절반이 공식 빈곤층이다.

IMF에 가입한 부국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정부는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돕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정부는 아르헨티나가 “무모한 경제 정책들”을 추구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르헨티나는 지난 1990년대 내내 IMF의 모범 사례였다. IMF와 서방 정부들은 1998년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수십억 달러를 빌려준 바 있다.

1998년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모범 지역”인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된 해였다. 그 위기는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 금융도박단인 미국계 투기성 단기자금 회사들을 강타했다.

당시 IMF가 차관을 제공하면서 덧붙인 조건은 라틴 아메리카 경제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대부분 실패했다. 이 조건들은 공공 지출과 임금 삭감, 사유화와 실업 증가였다. 그 결과 기업들은 파산했고 이것이 실업 증가로 이어져 위기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유화 때문에 경제의 많은 부분이 거대 투자가들의 변덕에 제물이 됐다. 이들 투자가들은 충분한 이윤을 남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돈을 해외로 빼돌리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다. 작년 말에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일이 정확히 이런 것이었다. 긴축 정책의 고통에 시달린 노동자ㆍ빈민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IMF의 정책들은 국제 투자가들이 계속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대중을 더 가혹하게 쥐어짜는 것이다.

브라질은 1998년의 위기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극복했던 몇 안 되는 라틴 아메리카 나라 중 하나였다. 새로운 IMF 패키지(차관과 그 부대 조건)는 라틴 아메리카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것과 같은 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일어날 결과를 미국이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패키지는 긴축 정책과 함께 브라질 대중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 긴축 정책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 대부분을 강타했으며 노동자ㆍ빈민의 저항과 항의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

IMF가 브라질 경제에 개입한 것은 세계 경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준다. 미국 재무장관 폴 오닐은 IMF를 쥐고 흔든다. 2주 전에 그는 브라질과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차관을 제공해 “구해” 줘도 아무 소용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브라질의 금융 위기를 더 심화시켰다.

그 전에 오닐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대규모 차관 제공 움직임을 막은 적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위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망해 가는 경제를 떠받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자유 시장 정책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위기가 억제되기는커녕 우루과이를 거쳐 이제 브라질까지 확산됐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대 규모 경제인 브라질이 심각한 경제 위기로 빠져들 때 벌어질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붕괴는 전 세계적 위기의 일부다. 아르헨티나는 제3세계 나라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남유럽 정도의 생활 수준을 누렸고, 매우 공업화한 나라다. 우루과이가 튼튼한 금융 중심지인 듯했을 때 우루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스위스”라 불렸다. 2주 전 정부가 은행을 폐쇄하고 예금 인출을 금지하자 폭동이 일어나고 총파업이 벌어졌다.

통계를 보면, 브라질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다. 게다가 경제 전문가들이 미국, 일본과 유럽의 새로운 경기 침체를 경고하는 와중에 위기가 닥쳤다.

8월 10일치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소비 수준]을 확장할 만큼 확장해 왔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차입을 늘리기보다는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과거 경제 실적이 하향 조정되자, 장차 부자가 되어 지금의 빚을 갚을 것이라는 꿈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경제의 유휴 설비를 고려하면, 투자 역시 크게 증가할 것 같지 않다. 경제 상황은 암울해졌다.” 저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브라질에서 수십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브라질 자본가들을 포함한 국제 자본가들은 현 정권의 대통령 후보이자 신자유주의 옹호자인 조제 세하가 패배할까 봐 두려워한다.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다투는 후보는 좌파 야당인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와 중도 좌파인 노동자전선의 시루 고메스다. 두 후보 모두 복지와 노동자 권리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룰라는 농민과 농촌 빈민을 위해 급진적인 토지 개혁도 요구했다. 현 정부가 지원하는 후보는 8월 초순에 IMF 패키지를 재빨리 수용했다. 룰라는 이에 대해 “사전 지지”를 말했고, 노동자당은 공식 성명서에서 “불가피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협정을 받아들인다.” 하고 밝혔다. 이것은 IMF와 은행가들이 원하는 그런 열렬한 지지는 아니다.

8월 9일의 한 여론 조사는 두 명의 좌파 야당 후보들이 다시 선두를 다투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거대 투자가들은 브라질 통화 가치를 3.8퍼센트 떨어뜨리고 브라질이 상환해야 하는 부채에 대한 추가 금리를 11퍼센트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10월에 룰라가 승리하면 노동자ㆍ빈민 사이에서 룰라 정부가 IMF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엄청난 고통을 가져왔지만 또한 지난해 12월 반란과 그 뒤 지속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취약해졌다.

미국 정부와 IMF와 다국적 기업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저항이 브라질과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 확산되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IMF 지지자들조차 IMF 패키지가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브라질에 경제 붕괴와 정치 혼란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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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꼬불꼬불한 길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꼬불꼬불한 길

이정구

지난 7월 1일 북한이 몇 가지 시장 개혁 조치들을 실시하자 북한 체제의 변화 가능성과 그 성공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 북한이 도입한 시장 개혁 조치는 가격과 임금의 대폭 인상, 식량 배급제를 시장 구입제로 전환, 기업의 독립채산제 강화와 인센티브 제도 도입, 환율 현실화 등이다. 이번 조치는 일부 경제 특구가 아니라 북한 전역에 시장 요소를 도입한다는 점이 전과 다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조치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 관리 방식”(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7월 19일치)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번 시장 개혁은 심각한 경제난과 공식 경제 부문의 생산성 저하로 인한 파산 그리고 사경제 부문의 증가에 뒤따른 대증 요법이라 할 수 있다.

북한 경제는 1999년을 제외하고는 1990년대 내내 마이너스 성장을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공장 가동률은 30퍼센트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기초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날로 심각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난이 더해지면서 공식 경제 부문은 거의 파산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은 매년 150만 톤 이상의 식량이 필요하다.” 하고 발표했다.

공식 경제 부문의 파산은 사경제 부문(농민 시장 등)의 확장을 가져왔다. 탈북자들은 북한 민중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의 60∼70퍼센트를 사경제 부문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물론 이 수치는 주로 산촌과 지방 소도시, 일부 농촌에 해당하므로 상당히 과장된 수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보다 사경제 부문이 늘어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북한 체제의 이번 변화는 사경제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공식 경제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시장 개혁과 개방의 길로

지난 2001년 1월 김정일은 상하이를 방문해 중국식 시장 개혁과 개방에 관심을 보였다. 북한의 이번 시장 개혁 조치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중국식 시장 개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처럼 전면적인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속단이다. 설사 김정일이 전면적인 개혁ㆍ개방의 의지가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길로 들어설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대외적으로는 북미 관계와 주변 열강들과의 관계, 대내적으로는 북한 관료 내부의 갈등과 여기에 자극받을 수 있는 계급 갈등이 개혁ㆍ개방의 속도와 폭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바람은 북한을 단기간에 제2의 중국처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과 개방을 시작한 1978년 이후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었다.

중국 개혁의 선두 주자로 칭송받은 덩샤오핑은 보수파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기층 민중의 도전도 심각하게 받아 왔다. 1989년에는 천안문광장에서 노동자와 학생 수천 명을 죽였다. 천안문 항쟁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지배자들은 6월이면 천안문 광장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혹시나 또 다른 반란의 불씨가 될까 봐 종교 단체인 파룬궁조차 탄압하고 있다. 시장 개혁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국의 지배자들조차 상해방과 북경방이라는 분파 갈등을 겪고 있다. 국영 기업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료 분파들 사이의 갈등과 함께 노동자ㆍ농민의 저항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과거의 경험

북한이 폐쇄적인 체제에서 처음으로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돌아서려 했던 것은 1984년 무렵이었다. 북한 경제는 1970년대 말부터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다가 1980년대 중엽부터 정체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1984년에 합영법과 독립채산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합영법은 북한 당국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북한에 들어온 외국 자본은 조총련계 기업 중심의 경공업 투자가 대부분이었고(1993년 말 기준으로 92.4퍼센트), 소련과 중국의 자본은 4.8퍼센트, 서방 국가들은 2.8퍼센트에 그쳤다.

1989년 동유럽 정권들이 몰락하고 1991년에는 구 소련까지 무너지자 북한 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제3차 7개년 계획 기간(1987∼1993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6퍼센트였다.

1989년 동유럽 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자 북한은 체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욱이 구 소련과 관계가 나빠졌고 1990년 한ㆍ소 수교가 체결되자, 지지부진하던 개혁ㆍ개방 정책은 후퇴하게 됐다. 동유럽 붕괴와 그 뒤 구 소련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김일성은 “제국주의 세력과 내부 수정주의자들의 복고 가능성”을 비판하면서 더욱 강도 높게 “주체형 사회주의 건설”을 외쳤다. 그러나 북한에게 1990년대는 한편으로는 체제 유지와,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침체 탈출을 위한 개혁과 개방이 동시에 필요한 시기였다. 1991년 1월 조ㆍ일 수교협상, 9월 유엔 동시 가입, 12월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은 북한이 다시금 개혁과 개방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렸다. 북한은 유엔 동시 가입을 계기로 대미 관계 개선과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9년의 천안문 항쟁이나 동유럽 몰락처럼 개혁 정책이 가져올 위험 때문에 북한은 개방을 제한된 지역으로 한정했다. 1991년 말 나진ㆍ선봉의 경제 특구는 중국의 선천을 모방한 것이지만 이러한 조심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 특구를 건설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려는 신중한 의도조차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진ㆍ선봉 지대의 외국인 투자 계약 규모는 총 1백11건, 7억 5천77만 달러였지만 1997년 말 현재 투자가 실제로 집행된 것은 77건, 5천7백92만 달러뿐이었다.

경제 특구 건설이 실패한 주된 이유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측면에 있었다. 1993년 미국의 핵사찰 압력이 두드러지게 강화됐고, 1994년에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들이 경제 특구에 투자할 리 만무했다. 둘째 이유는 1994년 김일성의 죽음과 체제 붕괴 우려였다. 김일성이 죽은 뒤 2∼3년은 북한 체제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시기였다.

김일성 사후 북한 체제를 떠맡은 김정일은 미국의 대북 압박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경제 위기를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 진정시킨 뒤에야 개혁ㆍ개방 정책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다. 김정일이 체제 추스르기를 끝내고 국방위원장으로 취임한 시기가 전환점이었다. 1998년 9월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경제 분야에서는 대외 무역과 경제 개방의 확대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를 두고 세계은행은 “변화 직전의 북한”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시장 중심의 경제 정책, 외부 지향의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조짐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는 여전히 부분적이고 제한적이었다.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김문성은 홍콩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 “향후 북한은 중국과 같은 대대적인 시장 개혁 개방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개방 정책만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중앙일보>, 1997년 10월 15일치).

 

전망

북한이 지금까지 추진해 온 부분적인 개혁과 개방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면적인 개방으로 나아가려 할 때에는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한 또 다른 난관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개혁과 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그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체제를 옹호하는 사상 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논평가들은 북한의 개방을 두고 “개혁 지향적 개방보다는 체제 수호적인 개방”이라고 하거나 “모기장식 개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헌법 개정 7개월 만인 1999년 4월 최고인민회의 10기 2차 회의는 “경제의 계획적 관리에서 그 어떤 분권화나 자유화도 허용하지 않으며, 국가의 중앙집권적 지도 원칙을 변함 없이 고수한다.” 하고 밝혔다.

게다가 <워싱턴 포스트>(1999년 1월 23일치)가 지적하듯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북한은 정체돼 있는 거대한 국가 산업 부문에 손을 대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미국의 압력 때문에 북한 관료들이 의도한 바대로 시장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지 W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북한에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 관료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원을 군사적 부문에 더 투입하는 소위 ‘강성 대국’으로 나아가게끔 압박할 것이다. 더한층의 문제는 북한 지배자들이 설사 부시가 강요하는 세계 제국주의 질서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래서 시장 개혁과 개방 정책이 서방의 지지를 받아 가속도가 붙는다 할지라도, 이로 인해 북한이 과연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서유럽을 지원한 마셜 플랜 같은 대규모 투자가 북한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공상이다. 오히려 동유럽에서 진행된 시장 개혁 과정이 북한의 시장 개혁과 개방의 앞날을 보여 준다.

동유럽에서 시장 개혁과 개방은 대다수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높은 실업률, 만성적인 경제 위기, 파탄난 사회 복지가 주된 결과였다. 서방의 다국적 기업들은 동유럽 경제 전체를 발전시키기보다는 수지 맞는 극소수 기업이나 사업에만 군침을 흘렸다.

김정일 앞에 놓여 있는 개혁ㆍ개방은 부분적ㆍ제한적인 것이든 만의 하나 전면적인 것이든 모두 위험스럽고 난관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그런 길이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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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동맹

농민, 농민 계급, 그리고 노동 계급

김인식

[편집자 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내에서 대선 후보 선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이 잡지의 관련 기사를 보시오.) 논쟁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와 농민의 관계다. 정현찬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민들은 민주노동당 강령에 동의할 수 없다.” 하고 말했다. 즉, “노동”이 중심 구실을 하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민의 계급적 성격, 사회 변혁의 주도 세력, 노농 동맹의 가능성 문제를 살펴본다.

대부분의 세계에서 농민은 주요한 사회 계급이다. 농민(peasant)과 자본가적 농장주(farmer)는 구별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농업은 자본주의적 기업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토지 소유자들이 대체로 농업을 지배한다. 그들은 공장주나 다국적 기업들처럼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은 선진국과는 다르다. 개도국의 농업 생산은 주로 농민에 의존한다. 이런 나라들에서 농민은 작은 땅뙈기를 경작하거나 자신의 생산물을 지주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

인도, 중국, 중동과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 보듯이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1천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민이었다. 농촌의 변화 속도는 도시에 비해 확실히 더뎠다. 사람과 기술 혁신은 도시에 집중됐다.

그렇다고 농민의 삶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 시장의 창출과 함께 자본주의가 확산됐다. 자본주의의 확산은 산간 오지에 살고 있는 농민의 생활 방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농민은 점점 더 세계적인 규모로(예전처럼 지방적 규모가 아니라) 판매되고 교환되는 농작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될수록 싸게 생산물을 사들여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자본주의는 다른 생활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8~19세기 영국에서 공장과 광산과 제분소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에서도 그 비슷한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 테헤란ㆍ리우 데 자네이루ㆍ방콕ㆍ멕시코 시티ㆍ알제리ㆍ카이로ㆍ라고스ㆍ봄베이 같은 도시들은 지난 20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날마다 16만 명이 더 나은 일자리와 삶을 기대하며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브라질 농촌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 운동은 정착 소작농이 아니라 “무토지 노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생산 때문에 농촌은 세계 시장의 상품 가격 변동에 연동됐다. 그리하여 도시의 자본주의 기업들에 맞선 투쟁에서 농민과 노동자 들은 더한층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농민층의 분화

한편, 토지를 둘러싼 농민층의 분화가 심화하고 있다. ‘농민'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상이한 범주들을 포괄했다. 그래서 농업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으로 분화된 상이한 농민층들이다. 오늘날의 제3세계나 신흥 공업국(한국을 포함한)에서도 사회적으로 분화된 상이한 농민층들이라는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반으로 ‘농민’에 대해 얘기할 때는 다양한 형태의 비자본주의적 또는 비사회주의적 농업 생산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농민의 농업은 마르크스의 용어로 말하면 소상품생산이다. 소생산자인 농민은 생산 수단을 보유(소유권 여부와 관계 없는)하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 생산 수단을 사용한다. 농민 노동력과 농민 생산 수단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농민 농업의 특징을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농민층들은 역사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다양한 생산 양식 내에서 존재해 왔다. 유물론은 농민층들이 처해 있는 생산 양식과 그 생산 양식 특유의 생산력ㆍ생산관계를 고려하면서 농민층들을 분석하려 한다. 농민층들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 기존 농촌 계급 구조의 일부다.

이 농촌 계급 구조 속에서 빈농은 프롤레타리아의 지위로 전락할 조짐을 보인다. 부농은 자본가 계급으로 바뀔 수도 있다. 중농은 전형적인 영세 소농민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약하게 발전할 수도 있고 강력하게 발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히 발전된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한편으로 임금 노동자 계급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적 농장주를 농민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농민은 해체돼 앞의 두 계급들 가운데 하나로 바뀔 테지만, 경제가 후진 상태에 있으면 농민은 그 계급들과 완전히 따로 존재할 것이다. 또한 지주 계급과 농민을 구별해야 한다.

순전한 임금 노동자는 생산 수단과 분리돼 있다. 그는 생산 수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생계 수단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농민은 생산 수단과 분리돼 있지 않다. 그는 토지를 잃었을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잃을 수도 있다. 즉, 그는 빈농일 수도 있고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토지와 생산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농민이다. 그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임차할 수도, 둘 다 할 수도 있다. 그의 토지 이용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농민의 결정적 특징은 그 토지를 보유(소유권 여부와 관계 없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역시 빈농의 경우). 하지만 이것이 그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아닌 한, 그는 농민이다.

자본가적 농장주가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구매해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농민은 가족 노동을 이용한다. 전형적인 빈농 또는 중농은 오직 가족 노동만을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빈농이나 중농조차 가족이 아닌 사람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자기 노동력을 파는 것은 물론 노동을 고용할 수 있다. 특히 수확기나 모내기 때 그럴 수 있지만, 더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다. 설사 부농이 임금 노동을 이용하는 계급일지라도 자본가적 농장주와 농민을 구별시켜 주는 점은 농민이 가족의 육체 노동에 계속 의지한다는 점이다.

지주 계급은 토지를 소유하고 그 토지를 소작인에게 임대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지주는 자기 토지의 일부를 노동 지대 형태의 농민 노동에 의해, 또는 채무 약정에 속박된 노동에 의해, 또는 임금 노동에 의해 경작시킬 수 있지만, 착취의 유력한 형태가 지대라면 그는 역시 지주이다. 농민이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일부를 경작하고 있고 다른 일부를 임대하고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주인 것은 아니다. 그가 여전히 경작하고 이것이 그의 주된 활동이고 그가 농민의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한은 그는 부농일지는 몰라도 지주는 아니다. 설사 고리대를 하는 농민일지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농민 투쟁의 성격

농민층의 분화는 농민 투쟁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만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종종 빈농은 “부농”에 대항해 싸운다. 공장 노동자든 사무직 노동자든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투쟁한다. 노동자들은 결코 공장이나 사무실의 일부를 소유하는 전략을 추구하지 않는다. 반면, 농민 투쟁은 토지의 일부를 통제하려는 개별 생산자들이 주도한다.

그래서 농민 봉기는 대토지 소유주나 지배 계급의 대리인에 맞서 비통함이 폭발하는 형태를 띤 뒤 분열했다. 이런 투쟁들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과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는 지배 계급이 농민 투쟁을 진압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시장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반면, 소수는 더욱 부유해진다. 그리고 소수의 부농은 세계적 착취 구조에서 지역 대리인 노릇을 한다. 그 때문에 토지를 둘러싼 첨예한 투쟁이 벌어지고 전통적인 복종 이데올로기가 흔들리고 있다.

현대 매스컴의 발달 덕분에 많은 농민들은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와 빈민 투쟁의 폭발력을 한 세대 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세계에서 농민들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가족 구성원의 임금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농민들이 착취자에 저항하는 데는 여전히 강력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노동자와는 달리, 농민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자본가들의 이윤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 같은 게 없다. 게다가 농촌에서는 보수적 사고 방식이 도시에서보다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세계화는 전 세계에서 많은 농민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 때문에 도시의 피착취자들과 농민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노농동맹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근대의 위대한 변혁 ― 1789년 프랑스, 1917년 러시아, 1949년 중국 ─ 에서 농민 투쟁이 한몫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다른 계급 ─ 도시의 두 주요 계급 가운데 하나 ─ 에 의해 지도될 때였다. 산업이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 농민을 지도할 세력은 도시 노동자 계급밖에 없다. 도시 노동 계급이 농민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당의 정치적 독립성이 필요하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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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악’ 논리와 단절하기

‘차악’ 논리와 단절하기

김인식

대선 후보를 둘러싼 민주당내 암투가 살벌하다. 민주당의 격렬한 분열은 노무현으로는 정권 재창출 가망이 없다는 불안감에서 비롯한다. 민주당내 보수파들은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지 넉 달도 안 돼 제거하려 한다. 권력 투쟁이 빚어 낸 자해성 상처는 심각하다. 분열이 분당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 듯하다. 김대중 정권의 위기는 노동 계급의 기대와 노동 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차 들어줄 수 없는 정권의 무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서 비롯했다. 노무현이 잠시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민주당 내 보수파들이 노무현을 제거하려는 것도 노무현의 유용성이 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보수파에 의해 제거될 위험에 처하자 중간 계급 자유주의자들이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실패가 또 다른 부르주아 자유주의자에 의해 극복될 수는 없다. 노무현은 보수파에 의해서만 용도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계급한테서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노동 계급에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회창은 아들 병역 비리 폭로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일보>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의 지지도는 4.4∼5.1퍼센트다.(<문화일보> 8월 12일치.) <한겨레> 여론 조사에서는 7.5∼8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했다.(<한겨레> 8월 12일치.) 권영길 대표가 국민승리 21 후보로 출마했던 1997년 대선 때 획득한 지지율은 1.2퍼센트(30만 6천26표)였다. <문화일보>는 권 대표의 출마가 다른 후보 “당락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우파 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 정당이 부르주아 개혁 후보(노무현)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른바 ‘차악’ 논리가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올라갈수록 득세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한총련의 8ㆍ8 재보선 지침은 우려스럽다. 한총련은 지침에서 주되게 반이회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회창이 아닌 대안에 대해서는 모호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경기도 학생위원회는 질문 형식을 통해 한총련의 지침을 옳게 비판했다. “한총련의 지침은 이런 민중의 정서와 동떨어져 김대중 정권의 부패 비리는 비켜나가고, 한나라당만 비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태도는 당연히 민주당 지지로 받아들여진다.”한국노총의 독자 정당 움직임도 썩 개운치 않다. 한국노총은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정책 연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2년이 지나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한국노총 지도부는 부르주아 정당과의 정책 연합을 내놓고 말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독자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부르주아 개혁 분파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러나 권영길 대표는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후보 중도 사퇴나 비판적 지지는 절대로 없다”고 못박았다. 이번 대선에서 기성 정당의 “개혁” 후보 지지가 아닌 진보 진영의 독자 후보 출마가 역사의 진보이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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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중심성인가 광범한 계급 연합인가

노동자 중심성인가 광범한 계급 연합인가

김인식

지금 운동은 강력한 단결과 연대를 요구한다. 발전소 매각을 반대하는 운동,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 주한 미군의 여중생 살해 사건 항의 운동 등은 다양한 세력들을 그 운동에 끌어들였다. 이런 정서는 선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지난 7월 16일에 ‘범진보진영 주요 단체 지도부’는 간담회를 열어 ‘2002년 대선 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범추’)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간담회에는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빈민연합(전빈련), 한총련 등 대표적인 대중 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이 참여하고 있다. ‘범추’ 구성 합의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진보 진영의 주요 단체들이 대선에서 보수 ‘개혁’ 후보가 아닌 진보 진영의 독자 후보 지지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일부 단체들의 태도가 다소 미심쩍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범추’ 자체는 진보 진영의 정치적 독립성 추구를 뜻한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예비 경선을 통해 선출된 단일 후보는 진보 정당의 이름으로 출마한다.”는 합의문을 채택했다. 둘째, ‘범추’는 대선에서 지배 계급의 보수 정당들에 대항하기 위한 진보 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 기구다. 우파 정당들에 반대하는 모든 진보 세력들이 대선에서 광범하게 단결할 필요가 있다. ‘범추’는 단결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범추’ 자체를 반대하게 되면 단결과 연대를 거부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이런 패턴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볼 수 있다. 짐바브웨의 민주변화운동(MDC)은 무가베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을 같이하는 자유주의자들, 노동조합 활동가들, 시민운동가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끌어들였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동맹(SA)에는 혁명가들과 개량주의자들이 함께 포함돼 있다. 사회주의자동맹은 노동당이 아닌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통해 노동당 정치의 타락에 대응해 왔다. 사회주의자동맹은 일련의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 2000년 런던 시장 선거, 2001년 6월 총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렇게 봤을 때 사회당 상임집행위가 ‘범추’ 불참을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 사회당은 ‘범추’가 “이념과 노선을 무시한 채 … ‘무조건 모이고 보자’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사회당은 ‘범추’가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의 통일 단결된 대오로 대통령 선거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의 비판대로 ‘범추’ 참가 단체들의 “이념과 노선”은 다양하다. ‘범추’는 정치적으로 동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보수 정당이 아닌 진보적 대안을 갈구하는 다양한 세력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사회당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통일 단결”은, 기성 정당들을 거부하지만 아직 ‘사회주의’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냉소적 무관심으로 뒷걸음질치게 할 수 있다. 사회당의 대선 전술은 자신의 세력 확대만을 고려한 정책인 듯하다. 게다가 한국 노동자 계급의 의식이 아직 노동조합 의식에서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도약하지 않은 현실을 건너뛰고 있다.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단결과 연대가 모색되고 있는 것은 기존 개혁 정당이 진정한 개혁을 제공하지 못함에 따라 생겨난 정치적 빈 자리를 시급히 메워야 한다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김대중 정부는 그 동안 민주ㆍ사회 개혁이 아니라 시장ㆍ경제 개혁을 선사했다. ‘범추’는 이에 따른 김대중 정부의 위기에 대한 진보 진영의 대응 가운데 좀더 특정한 측면, 즉 선거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다.

 

범추와 재창당

‘범추’ 참가 단체들의 “이념과 노선”이 다양하기 때문에 논쟁은 불가피하다.(부르주아 ‘개혁’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단체에는 분명한 태도 표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상이한 사회 세력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범추’에 포함돼 있다. 예컨대, 노동자 계급 단체인 민주노총과 농민 계층들의 단체인 전농이 ‘범추’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회 세력이 ‘범추’를 주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진정한 핵심이다. 때때로 민중 운동 내 이데올로기 차이의 이면에는 각 단체들이 대표하는 사회 세력의 이해 관계 차이가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설령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전국연합 지도부와 동일한 사상(포퓰리즘=민중주의)을 공유한다 할지라도, 전자는 노동자 계급의 이해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인 반면 후자는 그것과 무관하게 주장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범추’ 결성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피억압 사회집단(농민을 포함해)을 포괄하더라도 그 속에서 노동 계급의 주도력이 관철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초의 논쟁은 이런 사회 세력간 이해 관계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논쟁이 진행됐다. 왜냐하면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전국연합과 전농 등은 민주노동당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지 말고 곧장 범진보 진영이 참여하는 개방형 예비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소위 ‘1단계 경선론’). 전국연합은 “민주노동당이 사전에 당 후보를 결정하고 범진보 진영 예비 경선에 참여한다고 한다면 전국연합은 예비 경선에 후보를 출마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국연합의 성원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크게 나[뉘]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진보정치> 98호.)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이유인 듯하다. 애초 전국연합은 ‘범추’를 고리로 민주노동당을 재창당하고 싶어했다. 계획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번 기회에 민주노동당을 브라질 PT당보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산당과 더 닮은 당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던 듯싶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애당초 우리가 대통령 후보 선출에 관심을 갖고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은 이번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을 재창당해서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을 만드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진보정치> 당원판 2002년 7월 29일~8월 4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당 후보를 확정짓고 ‘범추’ 경선에 참여한다면(소위 ‘2단계 경선론’) 민주노동당 재창당 계획은 당분간 물 건너가게 된다. 전국연합이 ‘1단계 경선론’을 고집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전국연합(그리고 당내 지지자들)은 당의 노동자 성격을 희석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러면 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재창당론의 요체다. 그들은 노동당으로는 농민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정현찬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민들은 민주노동당 강령에 동의할 수 없다. 전농은 재창당이 아니라면 참여할 수 없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당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노동당”이라는 당명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 때문에 민중주의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노동당” 명칭에 함축돼 있는 계급 정치 개념을 비판한다. 그들은 계급이 아니라 민족 또는 국민의 이름으로 말한다. 계급은 민족 또는 국민에 비해 “협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세계적 성격 때문에 민족 또는 국민에 비해 훨씬 보편적이다. 국경과 인종과 성ㆍ성 지향의 차이를 넘어 단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

그러나 전국연합과 전농의 민주노동당 재창당 시나리오는 민주노총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민주노총은 ‘1단계 경선’을 사실상 거부했다. 7월 26일 민주노총 중앙위는 ‘8월 말까지 사회당이 범추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범추의 명칭과 내용을 재조정한다’고 결정했다. 이것은 ‘범추’를 매개로 민주노동당의 재창당을 꾀하는 전국연합과 전농의 시도를 견제한 결정이었다. 그 때문에 정대연 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은 “민주노총의 결정은 너무 성급했다.”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은 1987년 이래 꾸준히 확산돼 온 노동자 정치 세력화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의회를 통해 민주ㆍ사회 개혁을 법제화하고자하는 자연스런 염원이다. 동시에, 노조 상근간부층의 공식 정치 참여 염원을 나타낸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전국연합과 전농의 주도권 장악 시도를 거부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직후 열린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도 ‘1단계 경선’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논쟁 끝에 당 중앙위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해 ‘범추’ 예비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 중앙위의 결정은 당의 주된 사회적 기반이 노동조합(특히 민주노총) 간부들임을 보여 준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포퓰리즘 경향의 다른 조직과 다른 점은 당의 주된 계급 기반이다. 지난 6ㆍ13 지방 선거 결과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민주노총과 한길리서치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72.2퍼센트가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노동과 세계> 제204호.) 그러나 12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조합원은 36.1퍼센트였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노동조합 뿌리 내리기가 아직 불충분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따라서 당은 오히려 노동조합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성장 전략은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다. 당내 민중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 중간 계급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명에서 한사코 “노동”을 없애고 싶어한다. “노동” 대신에 “통일”과 “진보”가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한동안 그렇게 쉽게 노동자 계급에게서 이탈할 수 없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 형성 시기인 1997년부터 가까운 미래까지 노동자 운동이 고양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 분단, 근래에야 비로소 군사독재에서 벗어났고 아직도 억압이 극심하다는 사실,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 대자본과 국가의 유착 등의 요인들 때문에 당의 이데올로기는 민중주의의 한 형태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동자 정당이냐 아니면 국민 정당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내 좌파는 이 논쟁에서 노동자 당을 옹호해야 한다. 따라서 당내 좌파들은 노동자 계급 중심성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2단계 경선’, 즉 당 후보를 선출해 ‘범추’ 경선에 참여한다는 안을 지지하는 것이 옳았다.

 

누가 진보 진영의 후보가 돼야 하는가

‘범추’ 논쟁은 누가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가 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어떤 사회 세력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후보가 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당내 일부 좌파는 권영길 당 대표가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후보 선출 방식 논쟁에서 전국연합과 ‘동맹’을 맺었다. 소위 개량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당내 좌파가 “비노동” 포퓰리스트와 한 편에 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범추’ 논쟁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사회적 토대(기반)와 먼저 관계가 있다. 이렇게 봤을 때, 권영길 대표는 대다수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반영했다. 그가 승리한 1996년 연말~1997년 연초 ‘노동법 파업’의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전교조 출신임에도 민주노총 조합원 소수파와 ‘비노동’을 상징했다. 그런데도 좌파가 개량주의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비노동’ 포퓰리스트와 손을 잡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좌파와 우파는 노동 계급 운동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 개량주의를 반대하기 위해 “비노동”을 지지하는 것은 좌파적 태도가 아니다. ‘비노동’ 포퓰리스트들은 논쟁의 1라운드에서 뜻을 관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2라운드가 남아 있다. 2라운드의 무대는 ‘범추’ 예비 경선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는 2라운드에서도 노동자 중심성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는, ‘범추’ 예비 경선이 실시된다면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람(아마도 권영길 대표)을 지지하는 것이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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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외국인력제도 개선 방안’을 비판한다

정부의 ‘외국인력제도 개선 방안’을 비판한다

 정진우 외국인노동자 인권문화센터 실장

2002년 7월 15일,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이하 정부 방안)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와는 거리가 먼 미봉책일 뿐이다. 그 동안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은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허가제’의 도입, 연수제도 철폐와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사면과 합법화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30만 명에 이르는 이주 노동자들의 열망과 외노협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연수제도로 이익을 보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의 로비에 밀려 기만적인 정부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허가제가 아닌 연수 제도 확대ㆍ강화

정부 방안은 그 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켜 온 연수제도를 확대해 연수생을 8만 명에서 13만 명으로 늘리고, 업종도 기존 제조업에서 농축산업, 연근해어업, 건설업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또, 연수생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연수 제도로 들어오는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은 말 그대로 기술을 배우는 연수생이 아니라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연수생들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수차례 나왔다. 또한 중기협은 연수 제도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수많은 비리와 연결돼 있다. 1995년 1월에 중소기업연수협력단장이 해외 송출 기관한테서 1천5백만 원을 받았다. 또, 1996년 5월에는 중기협 연수협력단 운영부장과 운영과장은 베트남, 태국 등의 인력 송출 업체에게서 5백50여 만원을 뇌물로 받았다. 1997년 7월 통상산업부 중소기업진흥과장이 산업연수생 사후관리업체로부터 총 7천만 원어치의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 중기협 연수협력단 차장도 국내 인력브로커한테서 2천만 원과 태국인력 송출 회사한테서 13만 달러(1억 원)를 받았다. 2002년 3월에는 중기협 상근 부회장과  국제협력팀장이 2000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필리핀인 93명을 불법 입국시켜  주는 대가로 9천만 원을 송출업체한테서 받았다.

이처럼 연수 제도는 연수생들에게 기술 연수는 하지 않고 단순 노동을 시키면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제도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

정부가 연수 제도를 확대하려 하면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8월 1일부터 합동 단속반을 구성해 단속을 강력하게 펼치려 하고 있으며, 출국유예가 끝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등록한 이주 노동자 전부를 강제 출국시키려 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전부 내보내고 나서 그 빈자리를 연수생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 노동자 전원을 강제로 추방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자 이주 노동자는 물론,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조차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 동안 자행돼 온 정부의 강제 단속으로 수많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심지어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가해진 수많은 인권 침해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주 노동자의 불법 체류 문제는 그 동안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외국 인력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현실적으로 30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일시에 강제 출국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산업현장의 심각한 인력 왜곡을 초래할 것이다. 아울러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 단속과 추방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야기시킨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외국 인력 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연수 제도의 철폐와 노동허가제 실시, 그리고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사면이다. 이와 같은 대안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이번 정부 방안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한 ‘취업관리제’ 실시

정부는 외국 국적 동포(방문동거 사증(F1) 발급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서비스업의 취업을 허용하면서 2년 동안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관리제’를 도입하고, 친척 방문 연령을 현행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시행하려는 ‘취업관리제’로 들어 온 외국 국적 동포들은 노동자 신분이 아니라 방문동거 비자(F1)로 입국해 체류자격 이외의 활동으로 취업하게 된다. 취업관리제로 들어 온 외국 국적 동포의 체류 기간은 심지어 연수생보다 짧은 2년이다. 이와 함께 귀국보증금 예치, 사업장 이동 금지 등의 단서 조항을 달아 놓고 있다. 대법원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재외 동포들을 재외동포법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재외 국적 동포에 대한 제약을 담은 ‘취업관리제’를 들고 나왔다. 더욱이 ‘취업관리제’는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제도일 뿐 아니라 외국 국적 동포를 따로 분류해 다루고 있어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법에 위배된다.

 

이주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

이번 정부 대책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여론은 하나같이 정부 대책이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미봉책이며,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한 대가가 강제 추방이라는 현실에 이주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7월 28일 종묘공원에서 ‘산업연수제도 철폐ㆍ 강제추방 반대 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집회에 모인 2천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무책임한 정책의 희생양이 되기를 당당하게 거부하자는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더 이상 한국 정부 관료들과 중기협의 농간에 이주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이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그 동안 끊임없이 요구해 온 연수 제도 철폐ㆍ노동허가제 실시ㆍ미등록 노동자 사면의 절규가 처참하게 묵살되는 현실은, 분명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제 이주 노동자들도 한국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와 함께하는 한국인들은 강력한 투쟁으로 한국 정부의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정책을 반드시 철폐시키도록 하자.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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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 준 토론회

진보 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 준 토론회

김용석

지난 8월 12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가 각 당의 학생 조직자들을 초청해 대선 토론회를  열었다. 한나라당의 사이버 대변인 곽호성, 사회당 학생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영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준) 공동위원장 김인식 씨가 연사로 참여했다. 대선을 앞둔 토론회인만큼 사회적 쟁점이 됐던 장상 논란, 공기업 사유화,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대북 문제 등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었다.

학생 조직자들이 참석한 토론회였지만, 이 날 토론은 각 당의 이념과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 줬다.

토론의 모두 발언에서 한나라당의 곽호성은 가장 보수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를 칭송하며, “자생적 질서(시장 질서)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는 정당”이 한나라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 운영을 할 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반대로, 김인식 씨는 “김대중의 정책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실업이 1백만 명으로 늘었고 노동자들 가운데 60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의 빈부격차는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또, 그는 “이런 김대중 정부조차 사회주의적 정부라고 공격”하는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그들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 하고 주장해 토론 시작부터 격론을 예고했다.

토론 과정에서 한나라당 연사는 국가보안법, 서해교전, 대북 지원 등의 주제에서 일관되게 북한을 문제  삼는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은 서해교전 문제에서 “주적은 북한이며 … NLL은 바다의 휴전선”이라며 그것이 북한의 침략임을 분명히 했다. 또, “국가보안법은 유지되어야” 하고 “대북 경제 지원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대북 상호주의를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로 북한을 들었지만, 이 날은 민주노동당의 전지윤 씨가 북한과 무관한 병역 비리와 언론 개혁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돼 선고 재판을 받는 날이었다.

김인식 씨는 “국가보안법은 행동 이전에 말과 주장만으로도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이 문제”라며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를 사회당과 함께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현 국가보안법과 오십보 백보인 민주당의 민주질서수호법조차 반대하는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서해 교전은 “한반도가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며,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이용해 확전을 부추기는 위험한 냉전 세력”을 비판했다. 그는 “1953년 7월 7일 정전협정에는 문제가 되고 있는 NLL에 관한 규정은 없다. 북방한계선은 미국이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북침을 방지하기 위해 임의로 그어 놓은 선일  뿐”이라며 서해 교전이 남침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상호주의에 대해 “주한미군에게는 주둔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주둔비의 70퍼센트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일방적인 퍼주기 정책을 펴고 있는데, 미국에 대해서는 왜 상호주의를 주장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여중생 살해 문제에 관해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6월 30일 한나라당이 발표한 성명서는 미국을 비판하기보다는 “진상을 규명해 의혹을 풀고 … 오랫동안 깊이 쌓아 온 한ㆍ미 우호관계가 더욱 성숙ㆍ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 날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연사가 사회당ㆍ민주노동당 연사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쟁점은 공기업 사유화 문제였다.

한나라당 연사는 “민영화는 대세”이고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때문에 사유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리 해고 반대와 사유화 반대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면서 “공기업이 민영화되지 않을 경우 외국 자본이 투자하지 않고 한국을 떠날 텐데, 그러면 그 경제적 손실이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뜨거운 쟁점이 된 발전소 사유화에 대해 국민의 81퍼센트가 반대하고 14.6퍼센트만이 찬성했다. 한나라당은 14.6퍼센트의 찬성을 대세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김인식 씨는 “공기업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방만한 경영은 주로 공기업 경영자들에 의한 것”이라며, “이 책임을 왜 노동자들이 져야 하는가?” 하고 반박했다. 또, “공기업이 사유화되면 정리 해고와 각종 사고가 증가한다. 이윤이 남지 않는 곳에는 사장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며 이미 사유화된 기업도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연사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민주노동당이 사회당을 비판한 글을 뽑아 와 두 당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

이 날 토론에서 사회당과 민주노동당 연사들은 몇몇 쟁점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함께 공격했다. 이 날 토론이 보여 주었듯이,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부자들의 정당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당 연사는 게시판의 비판 글이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고, 민주노동당 연사도 사회당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답변해 한나라당의 분열 시도를 통쾌하게 좌절시켰다.

민주당은 “신당 창당 논의로 인해 당명을 걸고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토론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재보선 이후 분열하고 있는 민주당의 현 주소를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이번 대선 토론회는 한나라당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ㆍ사회당 같은 진보 정당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 자리였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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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지역 선거 활동의 경험

종로 지역 선거 활동의 경험

박성환

예상대로 8ㆍ8 재보선 투표율은 아주 낮았다. 37년 만에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투표하지 않았다. 이번 재보궐 선거 투표율은 1965년 재보궐 선거에서 26.1퍼센트를 기록한 이래 최저인 전국 평균 29.5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는 15대 국회 임기 중 치러진 20개 재보궐 선거 평균 투표율 43.5퍼센트에도 크게 못 미친다. 특히 해운대 기장갑 선거구는 18.8퍼센트의 투표율로 선거구 중 가장 낮았다.

낮은 투표율은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과 분노 때문이다. 연이어 터지는 부정 부패 추문, 병역 비리, 기성 정당들의 정쟁에 대다수 유권자는 투표 기권으로 환멸과 분노를 표현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6ㆍ13 지방 선거에 이어 또다시 처참하게 패배했다. 민주당은 13개 재보궐 선거구 중 광주와 군산 두 곳에서만 당선했다. 노무현 바람도 불지 않았다. 민주당은 서울 지역에 노무현 지지자들인 유인태, 장기표, 이목희 등을 후보로 내세웠다. 게다가 노사모가 직접 선거 지원을 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민주당은 재보궐 선거 참패 때문에 분열과 내분에 휩싸여 있다. 민주당은 신당 결성 방식을 둘러싸고 사분오열하고 있다.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과 집권당의 위기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사회 변화와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새로운 대안의 갈구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종로 3.72퍼센트, 금천 6.56퍼센트, 마산 합포 6.92퍼센트 지지를 얻었다. 평균 득표율이 5.8퍼센트였다. 이것은 6ㆍ13 지방 선거 때 득표율보다는 높지 않지만 민주노동당이 상당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6ㆍ13 지방 선거보다 언론의 주목을 덜 받았고 더 무관심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게다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지난 지방 선거와 달리 대선 논쟁과 준비로 선거 활동을 거의 지구당 역량에 내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지방 선거 때 민주노총이 조직 노동자들에게 계급 투표를 호소하는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선거 지원을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런 호소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더욱이 선거날이 공휴일이 아니어서 노동자들이 거의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고려할 때, 민주노동당이 전국 평균 득표율 5.8퍼센트를 기록한 것은 대중의 급진화가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

 

종로 지역 선거 활동

종로 지역은 선거를 불과 5일 앞두고 후보를 선출했다. 그러나 종로 지역 선거 활동가들은 6ㆍ13 지방 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 준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민주노동당을 선전하기 위해 빠르게 선대본 체계를 꾸렸다.

다함께는 7월 20일부터 선거 상근 33명, 선거 지원자 70여 명, 연인원 4백50명이 참가해 헌신적으로 선거를 지원했다. 우리는 정책팀, 후보 수행팀, 의정부 여중생 서명 조직팀, 유세팀, 선관위 업무, 사무담당, 전화유세 등 선거 운동에 필요한 모든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했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전국노점상총연합회(전노총련) 소속의 노점상들, 각 지역의 철거민들, 서울대 학생위원회, 성대 학생위원회 동지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특히 서울대 학생위원회 동지들과는 처음으로 거리에서 펼칠 주장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 행동하는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경험은 대선이나 이후 벌어질 다른 투쟁에서 서로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우리는 국민적인 분노와 항의가 일어나고 있는 미군의 의정부 여중생 살인 사건 서명 운동과 선거 투쟁을 결합해 진행했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3천여 명의 서명과 70만 원이 넘는 모금을 받으면서 대중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반미 감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우리는 주한 미군 문제와 함께 미국이 벌이려는 이라크 전쟁을 폭로하고 전쟁과 미국에 반대하는 운동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종로 선대본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과 선거 활동을 결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묘와 대학로에서 열린 세 번의 의정부 여중생 집회, 장애인 이동권 연대회의가 벌인 “버스를 타자” 집회, 80여 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경희의료원과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집회에 참가해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거리에서 노동자 대중과 함께 싸우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을 호소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훌륭한 연설자이자 조직자가 됐다. 골목 골목에서, 마을버스에서, 지하철 역 안에서, 거리에서 우리는 부패한 데다가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보수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을 호소했다. 또, 미국에 반대하는 주장과 비정규직 문제, 주택문제, 주5일 근무제와 노동시간 단축 문제, 의료 문제,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좌파적 대안을 선전했다.

 

과제

보수 정당의 위기는 민주노동당이 더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캠퍼스와 거리에서 민주노동당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대학, 학교 앞 지하철 역, 대학로, 인사동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당원 모집 가판을 차려 급진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자. 그리고 그들이 좌파적 대안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

의정부 여중생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서명이나 시위ㆍ투쟁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그 투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 계획을 폭로하고 반전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광범한 반전 운동을 조직하고 미국의 추악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해야 할 것이다. 캠퍼스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전쟁과 미국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12월 19일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분노,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열망, 세계적으로 급진화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더한층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선 운동에 적극 참여해 더욱 왼쪽으로 가고 있는 대중을 만나고 그들을 기성 정당이 아닌 새로운 좌파적 대안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고 주장해야 한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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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적색이다》(폴 먹가, 북막스) 서평 - 가장 효과적인 녹색은 적색이어야 한다

《녹색은 적색이다》(폴 먹가, 북막스) 서평 - 가장 효과적인 녹색은 적색이어야 한다

장준석

 

이 책은 지구 온난화와 유전자 변형 식품(GMOS)을 예로 들어 이윤 지상주의가 낳은 환경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초점으로 삼은 이 두 가지 쟁점은 환경 문제가 자본주의의 엄청난 야만의 일부라는 점을 보여 준다.

 

지구 온난화와 화석 연료 기업들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인 이산화탄소가 급증하는 것은 화석 연료의 연소에 기초한 생산 방식 때문이다. 화석 연료 기업에 의존하는 세계 주요 공업국, 그 중에서도 미국과 유럽은 세계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배출한다.

이들 화석 연료 기업은 가스 배출을 억제하려는 시도들을 분쇄하려고 애쓴다. 셸과 화석 연료 기업들이 설립한 ‘지구기후연합’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조처를 반대하는 캠페인에 1천3백만 달러를 썼다. 또, 자신들의 계획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 민주ㆍ공화 양당에 5천만 달러씩 제공했다. 영국석유회사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은 지구 온난화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경 친화적인 로고를 공개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미국에 있는 BP의 정유 공장은 대기 오염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천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화석 연료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은 정부와 국회에 수천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제공해 유대를 강화한다. 1940년 GMㆍ스탠더드 오일ㆍ파이어스톤과 같은 자동차ㆍ석유ㆍ타이어 업체들의 동맹은 미국 45개 도시의 전철과 무궤도 전차 교통망을 조직적으로 파괴해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때 불법 공모죄로 GM의 회계 담당자가 낸 벌금은 1달러 27센트뿐이었다.

영국 왕립위원회 과학자들은 심각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향후 20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퍼센트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90∼1996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공업국 전체의 배출량은 감소하기는커녕 전체적으로 4퍼센트 증가했다.

이들 화석 연료 기업들이 중대한 도전을 받지 않는 한, 예기치 못한 더위와 가뭄, 홍수와 산사태 등의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종자에서 접시까지”

겨우 다섯 개의 기업이 사실상 유전자 변형 종자 시장을 전부 지배하고 있다. “유전자 거인들”이라는 이 기업들은 세계 살충제 시장의 3분의 2와 비유전자 변형 종자 시장의 4분의 1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계속 종자 관련 회사들을 사들이면서 자사 제품들에 대한 농업 의존도를 증대시키려 한다. 유전자 변형 기업들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해 그들이 만든 식품의 특허권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 한다. 또, “종자의 저장과 공유를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종자에서 접시까지 먹이 사슬 전체를 통제하고 싶어한다.

이 거대 기업들은 유전자 변형 상품이 지극히 안전한 제품이고,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결정적 구실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틀렸다.

이 기업들의 유전공학은 단순히 유전자를 하나 주입함으로써 원하는 형질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유전공학자 호매완은 “유전공학 기술은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상업과 손을 잡은 불량 과학”이라고 비판한다. 환경이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본 사실조차 외면하는 유전자 변형 기업의 기술은 새로운 음식 알레르기와 치명적인 박테리아 질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이 기아를 해결할 것이라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기아 문제는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식량 및 개발 정책 연구소’의 말대로 오늘날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기아의 진정한 원인은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데 있다.

 

녹색은 적색이다

산업, 과학, 개발 자체를 부정하는 생태주의는 환경 운동의 약점이다. 문제는 산업이나 과학이 아니다. 문제는 환경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 체제다.

저자는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연소 설비를 개선하거나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격리하는 방법 또는 대중교통의 확대와 더 나은 단열재의 사용 등을 제시했다. 그와 동시에, 이 모든 방법에는 공공 투자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부자와 대기업에 과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국가가 그런 조치를 취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기껏해야 국가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거대하게 일어날 때에 기업들과 타협할 뿐이다. 저자가 옳게 주장했듯이, 기업의 지배를 정말로 끝장내는 데 필요한 사회 변혁의 열쇠는 기업들의 부를 좌우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 계급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기업의 지배를 끝장내고 생산 관계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녹색은 적색이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가장 효과적인 녹색은 적색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환경 위협은 이윤을 최우선에 둔 다국적기업들 간 경쟁의 산물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윤 중심의 체제, 즉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반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열쇠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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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몰이에 희생당하는 지구

이윤 몰이에 희생당하는 지구

폴 먹가(Paul McGarr) - 응용 수학자 출신의 영국 좌파 저널리스트

지난 몇 십 년 동안 홍수ㆍ기근ㆍ태풍처럼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 패턴이 더욱 흔해진 듯하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온실 가스 방출과 환경 오염의 영향이 커진 결과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많아지고 있다.

8월 12일 국제연합(UN)의 과학자 팀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과 지구를 위협하는지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과학자들은 아시아 대륙의 대기권에 넓이 2천5백6십만 제곱킬로미터, 두께 3.2킬로미터의 인공 오염 안개인 “아시아 갈색 구름층”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국제 기후학자 팀의 책임자는 폴 그룬첸 교수였다. 그는 극지방 만년설 위의 오존층에 뚫린 구멍을 연구해 1995년 노벨상을 받았다. 오존층의 구멍은 분무기(에어로졸), 냉장고, 공장에서 나오는 ‘염화불화탄소’라는 화학 물질 때문에 생겨났다. 이 뛰어난 과학자들이 아시아를 뒤덮은 오염 물질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고한 것을 모든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시아 갈색 구름층”은 보고서가 “움직이는 짙은 안개”라고 부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개는 자동차와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과 먼지, 숲을 태우거나 요리할 때 태우는 나무에서 나오는 재와 검댕으로 구성돼 있다. 이 유독 혼합물 외에도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도 갈색 구름층을 형성하는 한 요소다.

UN 과학자 팀은 여기서 생성되는 화학 안개가 일조량을 15퍼센트 가량 차단한다고 말한다. 또, 대기권 아래에 열을 가두어 그 지역의 기온을 높인다. 그 결과 기후 패턴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UN 과학자 팀은 화학 안개가 인도의 겨울철 쌀 수확을 10퍼센트 감소시켜 수백만 명을 [기아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추정한다.

올해 인도의 약 13개 주는 역사상 최악의 가뭄을 기록했다. [반면에] 8월 중순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홍수와 이에 따른 산사태 때문에 수십 명이 사망했다.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과 최고 기온이 방대한 지역에서 농사를 망쳐 놓았다. 그러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엄청난 홍수 때문에 이미 8백 명 넘게 죽었다. 이와 똑같은 극단적인 패턴이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반복돼 왔다.

캄보디아에서는 2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 때문에 주식인 쌀 농사가 타격을 입었다. 베트남의 메콩강 삼각주에서는 홍수 때문에 재앙이 벌어지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3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 때문에 1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UN 과학자 팀에 따르면, 이 화학 안개는 아시아에서 호흡기 질병을 증가시키고 “수십만 명”이 요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은 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갈색 구름”은 대기권 높은 곳에 떠 있는데, 적당한 조건에서는 재빨리 전 지구로 확산될 수 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는 홍수가 났고 유럽의 여름은 역사상 가장 습도가 높았다. 올 상반기에 북반구에서는 1백43년 전 공식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다. 전 세계적으로 올해 상반기는 1998년 상반기를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더웠다. 1998년의 기상 이변은 엘니뇨 현상 ― 태평양 해류가 주기적으로 바뀌면서 강우 패턴을 어지럽히는 것 ― 과 관련 있었다. UN 과학자 팀은 새로운 엘니뇨가 이미 진행중이며 이에 따라 기상 이변과 불안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이 주도한 오염

대다수 과학자들과 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 방출로 인한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가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클라우스 퇴퍼에 따르면, 이러한 오염의 핵심 원인 중에는 “차량, 공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화석 연료와 수많은 비효율적인 요리 기구에서 방출되는 온실 가스의 극적인 증가”도 포함된다.

온실 가스를 방출하는 주범은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유럽이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언론은 불규칙하고 무계획적으로 확대되는 아시아 도시들에서 자동차 사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갈색 구름층”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거대 자동차ㆍ석유 회사들과 여타 기업들은 자동차, 타이어, 석유를 더 많이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도로 건설 계획에도 관여해 이윤을 늘리고 싶어한다.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 포드, 제너럴모터스 같은 기업들은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들의 “시장 잠재력”을 보고 침을 흘린다. 이런 기업과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들은 깨끗하고 값싼 대중 교통을 계획하기는커녕 대중 교통을 망치고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이 이미 시달리고 있는 환경 오염을 강요하고 있다.

언론은 아시아 나라들에서 화전(火田)의 구실과 요리용 땔감의 사용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화전은 전 세계 자원을 착취하는 거대 벌목ㆍ광산 회사들의 집중적인 노력, 토지를 얻기 위해 숲을 태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빈곤과 관계 있다.

사람들이 요리할 때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달리 깨끗한 대안을 갖지 못하게 하는 빈곤 때문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전 세계의 자원을 약탈하는 거대 기업들의 활동을 규제하고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환경 파괴자 대기업

들8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릴 예정인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구정상회의’는 ‘지구 온난화와 대기 오염 억제, 세계의 자원에 대한 약탈 중단, 빈곤 저지’를 의제로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아무런 국제적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국제 구호 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그리스도인의 원조)는 정상 회담에 대해 이렇게 비난했다. “기업가들은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상 회담의] 의제가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부당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토니 블레어는 거대 기업들 ― 그 중 많은 수는 끔찍한 환경 파괴 전력을 갖고 있다 ― 의 기업주들을 초청해 대표단에 포함시켰다. [수도 회사] 템스 워터의 최고경영자 빌 알렉산더, 광산 회사 리오 틴토의 회장 로버트 윌슨이 그런 자들이다. 영국 환경청은 템스 워터가 지난 8년 동안 20번 이상 환경 보호 법규를 위반했다며 기소했다.

세계 최대 광산 회사인 리오 틴토는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자연 보호 구역인 호주 카카두 국립 공원에서 우라늄을 채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환경 단체인 ‘지구의 친구들’은 영국 대표단을 일컬어 “블레어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대기업들의 환심을 사기로 결심했음을 보여 주는 매우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정상 회담은 녹색 물이 약간 든 빈곤 퇴치 옷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몰이의 홍보 행사일 뿐이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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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 게양과 흔들기를 자유화하라

인공기 게양과 흔들기를 자유화하라

이정구

북한이 내달 29일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자 김대중 정부는 인공기 게양과 응원단의 인공기 사용 허용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있는 현실에서 인공기 게양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적 표현물’에 해당하는 인공기를 경기장 밖에서 내걸 경우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헌장에는 경기장에서 참가국의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명기해 놓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아시안 게임을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고 … 남과 북이 평화와 화해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스포츠 제전으로 삼겠다고 너스레를 떨어 왔다. 지난 4월 임동원이 특사로 방북해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달라고 북한에 요청했고 북한 참가단의 경비를 한국이 지불하기로 한 터에, 경기장에서 인공기 게양과 북한 국가 연주를 하지 않는 것은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는 스포츠일 따름이라고 생각하고 인공기 응원에 대해 관대하다. <문화일보>와 연합뉴스 설문조사에 의하면,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북한 응원단과 남한 서포터스가 경기장에서 인공기를 들고 응원해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서해교전 때처럼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보다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감돌기를 바란다.

 

인공기

서해교전이 벌어진 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들은 김대중 정부와 햇볕 정책을 연일 공격했다. “쌀 퍼줬더니 총알이 날아왔다”는 것이 대표적인 논조였다.

김대중은 집권 내내 우익의 공세에 직면하면 그들을 추종하는 식의 대응을 보여 왔다. 이번 서해교전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김대중은 ‘우발적인 사건’에서 ‘고의적 도발’로 말을 바꿨다.

7월 25일 북한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발표하고 제7차남북장관급 회담을 제의하자 김대중 정부는 즉각 환영을 표현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북한측의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보장을 요구하고,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밝히자 정부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7월 25일 북한이 서해교전에 ‘유감’을 표명하고 콜린 파월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북미간 대화 가능성이 커졌다. 7월 31일부터 열린 아시아지역안보포럼에서 외무장관 백남순과 미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비공식 회담을 열어 북미 대화 재개와 국무부차관보 제임스 켈리의 방북에 합의했다.

서해교전이 벌어진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북한의 유감 표명을 계기로 불안정하기는 하나 북미 대화 국면이 형성된 결과, 남북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북한은 경제 위기와 식량난 때문에 경제 원조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김대중 정부는 ‘홍삼’ 부패 추문과 총리 인사청문회 파문으로 추락한 인기를 회복할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북미간 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문제는 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미국이 설정해 놓은 의제에 있다. 콜린 파월은 앞으로 벌어질 북미 대화의 의제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문제와 제네바 합의 이행, 재래식 군비 감축으로 못박았다. 지난 1월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미국이 즉각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에 대한 압박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은 계속해서 북한에 핵사찰 압력을 넣어 왔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이 함께 테이블에 앉는다 해도 미국의 북한 압박이 지속되는 한 지금의 북미 대화 국면은 매우 불안정하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북미 관계가 이처럼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번 남북한 장관급 회담도 큰 진전을 보기보다는 이전 합의 사항 가운데 일부 덜 중요한 사항들을 이행하는 수준에서 끝날 공산이 크다.

 

불안정한 대화 국면

지금의 남북 대화 국면은 북미 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긴장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이런 모순적이고 불안정한 국면에서 <조선일보>와 냉전 우익들은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다. 서해교전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김대중 정부를 압박하는가 하면, 경수로 콘크리트 타설식에 맞추어 북한이 경수로 건설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요지의 미국 핵 과학자의 말을 보도했다.

이번 인공기 논란도 이런 배경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대중은 인공기가 무분별하게 게양되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밝혀 냉전 우익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남북한 지배자들이 서로 만나 환담하고 있는 이 때, 한총련 간부들은 수배 상태에 처해 있는 이 현실은 정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진정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말하려면 아시안게임 때 어디서든 인공기를 게양하고 흔들며 북한 선수들을 자유롭게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을 지지하든 비판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토론하고 논쟁할 문제지 국가가 탄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인공기 논란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할 필요성을 또다시 보여 주고 있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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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이라크 전쟁을중단시켜야 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이라크 전쟁을중단시켜야 할 때다

 

[편집자 주] 스콧 리터는 1990년대 미국의 대 이라크 작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미국 공화당원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영국 하원의원들의 모임에서 부시가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이라크 전쟁이 정당하지 않다는 연설을 했다. 이 글은 그의 연설문을 편집한 것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친구가 음주운전 하지 못하게 말려라.” 하고 말합니다. 미국 대외 정책을 조종하는 사람들 중에 술 취한 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친구들이 들고일어나 이 미치광이들을 중단시키고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자동차 열쇠를 빼앗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에게 투표한 공화당 정회원입니다. 저는 이라크 민중의 친구로서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이라크에서 무기 사찰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그 곳에서 근무한 것은 이라크에 우호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라크를 무장 해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우리 조국을 걱정하는 미국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죽음과 파괴를 향한 그 길은 여러분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전쟁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잘 훈련되고, 가장 탁월한 지도부가 이끄는, 가장 잘 무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군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살인 기구입니다. 이라크는 완전히 파괴될 것입니다. 저는 해병대에서 12년을 복무한 예비역 군인입니다. 저는 제2차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싸웠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말할 때, 전쟁이란 죽음과 파괴를 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둡시다. 전쟁터에서 총알이 빗발칠 때, 영화에 나오는 배경 음악 따위는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적군을 죽이지 못하면 여러분이 죽습니다. 그것이 전쟁입니다. 좋은 전쟁 따위는 없습니다. 정당한 전쟁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이라크가 현재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저는 전쟁에 찬성하는 서명란에 가장 먼저 서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담 후세인은 불량 국가를 이끄는 못된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나 토니 블레어, 조지 W 부시와 같은 편에 설 것입니다. 저는 1998년 12월부터 이라크에 무기 사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 사찰단이 없으면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8년 12월에 무기 사찰단이 화학ㆍ생물학ㆍ핵무기 제조에 이용할 수 있는 공장들을 파괴했습니다. 그 공장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엄격한 통제와 감시를 통해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 제조 능력을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지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에서, 예컨대 대량의 액체 탄저균을 생산하던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곳을 1996년에 폭파했습니다. 액체 탄저균은 이상적인 저장 조건에서조차 3년 이상 보존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이라크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겼다고 해도 그것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1998년 12월에 우리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제조하고 보존할 능력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생화학 무기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산업 시설에서 제조해야 합니다. 이라크가 그런 시설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가 고운 가루나 액체를 걸러내는 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세계 최고의 첩보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만일 이라크가 그런 장비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에게 들킬 것입니다. 장비를 얻어서 생화학 또는 핵무기 공장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우리에게 들킬 것입니다.

영국 총리나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빙 서류가 있다고 말하면 그 서류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십시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전쟁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그들은 대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할 증거라면 뭐든지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믿을 만한 정보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일 모든 미국 일간지 1면을 장식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이라크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알카에다나 테러리즘과 연계를 맺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 무기가 없습니다. 둘째, 사담 후세인을 9ㆍ11 테러나 반 서방 테러 조직들과 연관지을 수 없습니다. 셋째,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확산시켰다는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라크 전쟁]이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전쟁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국 내 정치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금 워싱턴에 있는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대변한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증오하고, 당연히 클린턴이 단호하게 이라크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은 것도 미워합니다.

그들은 이라크 정권 교체를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이란 미국 외의 세계 각국, UN, 국제법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미국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유일 초강대국이며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책이 돼 버렸습니다. 이 정책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부입니다. 저는 비애국적이고 국가의 적이라는 혐의로 고소당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 해병대에 복무하면서 훈장도 받은 예비역 군인이며 일생을 조국에 바쳤습니다. 저는 제가 뽑은 대표자들이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일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 헌법적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대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 동료들이 주장한 내용을 더욱 강화해 줄 뿐입니다. 그들은 9ㆍ11 테러가 서방과 이슬람 간의 문명 충돌을 알리는 일제 사격의 서막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이런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그건 아니다, 오사마. 당신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아.” 하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교체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저는 설마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를 점령하려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면 우리가 세운 정부는 붕괴할 것이고,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가 들어설 것입니다. 많은 중동 국가의 국민들은 점점 더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터키, 이집트에서 도미노 효과를 보게 될 것이고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라크 침공은 9월 11일 미국을 공격한 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대 이라크 전쟁을 진전시키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만 명의 해병대가 이르면 올해 10월 초에 있을 대규모 지상전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보잉사의 스마트탄 납품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르면 10월 초에 전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대 이라크 전쟁을 위해서 일단 군대를 파병하고 경제적ㆍ군사적ㆍ정치적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하면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대 이라크 전쟁을 중단시켜야 할 때입니다.

영국에 사는 여러분이 블레어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면 여러분은 엄청난 승리를 거두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 국민들을 자극할 것입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 전쟁을 중단시키는 데 무기력하다고 느낍니다. 그들에겐 사례가 필요합니다. 저는 영국인들에게 그런 모범을 만들어 미국인들을 이끌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이 전쟁을 중단시킵시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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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불안정해진 세계

더욱 불안정해진 세계

이수현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자본주의와 군사력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WTC)와 국방부 건물이 비행기 자살 테러로 무너졌다. 공격자들이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미국 정부를 동일시하는 바람에 비극이게도 3천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9ㆍ11 테러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낳은 쓰디쓴 열매였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그라나다ㆍ리비아ㆍ파나마ㆍ이라크ㆍ소말리아ㆍ유고슬라비아를 무력 침공했다. 1991년 제2차 걸프전에서는 2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죽었고, 그 뒤 10년 동안 지속된 경제 제재 때문에 1백만 명이 사망했다.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지난 50년 동안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고 탄압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테러와의 전쟁”의 표적으로 삼았다. 부시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인 다음, 10월 8일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감행했다. 20년에 걸친 내전ㆍ빈곤ㆍ기아에 시달린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 번 제국주의 열강이 벌이는 “위대한 게임”의 졸이 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투입된 B-52 폭격기는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초토화했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해 6천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공습 개시 후 두 달여 만에 탈레반 정권은 항복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올해 2월에는 CIA 간부조차도 군벌들 간의 경쟁이 새로운 내전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3월 초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당초 전쟁의 목적이라던 빈 라덴이나 알카에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파슈툰족ㆍ우즈벡족ㆍ타지크족ㆍ하자라족 등 종족 간 갈등과 폭력, 약탈도 그치지 않았다. 그나마 국제 구호 단체의 원조로 근근이 연명하던 사람들은 이제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식들을 내다팔아야 한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국의 꼭두각시인 카르자이 임시정부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벌들의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고 지난 7월 초에는 부통령 카디르가 암살당했다. 또,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을 받아 사망하기도 했다.

내전, 폭력, 빈곤, 기아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남긴 진정한 유산 목록이다.

 

분쟁의 격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 맛을 본 매들은 전 세계 창공을 누비며 새로운 먹이감을 찾았다. 1993년 10월 44명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살해당한 소말리아, 친미 인도네시아 국가에 맞서 독립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체 지역, 무슬림 반군 아부 샤아프가 친미 아로요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필리핀의 바실란 섬, 2000년 미국 군함 USS콜 호가 폭파된 예멘 등이 표적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또 남미의 브라질ㆍ파라과이 국경 지대에서도 군사 작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부시를 본받아 팔레스타인 민중을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했다. 지난 4월에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 예닌을 침공해 5백여 명을 학살했다. 2000년 9월 제2차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인티파다)가 시작된 이래 1천5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다.

작년 12월 인도에서는 국회의사당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힌두 근본주의자 총리 바지파이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파키스탄을 몰아붙였다. 파키스탄의 군사 독재자 무샤라프는 핵무기까지 들먹이며 맞섰다. 각각 수십 기씩 핵무기를 보유한 양국은 카슈미르의 “통제선”을 따라 1백만 대군을 배치한 채 서로 포격전을 주고받았다. 만약 양국이 전면전을 벌여 핵무기를 사용하면 약 1천5백만 명이 즉사할 것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9ㆍ11 테러 전에 이미 여러 해 동안 체첸에서 “이슬람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군사 기지를 이용하는 대가로 체첸 전쟁을 마음놓고 수행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위기가 더욱 심화했다. 부시는 올해 1월 국정 연설에서 이란ㆍ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뿐 아니라 휴전선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까지 들먹이며 북한을 압박했다. 올해 6월에 서해에서 벌어진 교전은 따지고 보면 미국이 북한을 압박한 결과였다.

 

새로운 전쟁

9ㆍ11 테러 직후부터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이라크 정보 기관과 알카에다를 연결시키려 했다. 그러나 CIA 국장이 증인으로 내세운 체코 관리와 영국 정부조차 그런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탄저균 공격의 배후로 이라크를 지목했지만, 그 탄저균의 출처가 미국 국방부 자신이었음이 드러나 이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부시는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해 마녀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8월 10일 부시는 “임박한 전쟁 계획”이 없다면서 한발 뺐다. 그러나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전혀 변함이 없다. 지금 미국의 지배자들은 전쟁 시기와 방식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려 있는 듯하다. 11월 중간 선거 전, 선거 직후, 내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총 25만 명의 지상군을 동원하는 전면전이냐, 아니면 8만 이하의 “소수 정예” 부대로 곧장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이른바 “내부 전복” 전략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을 택하든 그들은 인구 3백만 명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폭격해 생기는 대규모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로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전혀 없다. 전직 유엔 관리들 ― 구호담당조정관 데니스 핼리데이와 그 후임자 한스 폰 스포넥, 무기사찰단장 스콧 리터 ― 조차 이라크가 핵무기나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할 능력이 없다고 증언해 왔다.[스콧 리터의 연설문이 실린 다음 기사 참조] 또, 지난 주에 이라크 정부가 유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부시 일당은 그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션 먹코맥은 “1995년 이후 변하지 않은 우리의 정책은 바로 [이라크의] 정권 교체다.” 하고 말했다. 무기 통제 담당 차관 존 볼턴은 미국의 정책이 “무기사찰단이 들어가든 말든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스포넥은 “미국 국방부와 CIA는 오늘날 이라크가 미국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중동 지역에서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조지 W 부시는 자기 아버지가 이라크에서 시작한 일을 끝마치고 싶어한다는 것이 바로 그 대답이다. 그 일은 중동의 석유 자원을 약탈하는 미국 정부의 능력을 보호함과 동시에 미국이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 즉 미국의 패권과 지배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다.

 

반전ㆍ반자본주의 운동

9ㆍ11 테러 이후 기성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제 반자본주의 시위와 저항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제노바 시위가 초래한 급진화 이후 자본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과 저항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작년 12월 영국 런던과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각각 10만 명이 반전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올해 1월 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7만 명이 모여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했다. 2월에는 9ㆍ11 테러의 현장 뉴욕에서 세계경제포럼(WEF)에 항의하는 시위에 2만 명이 참가했다. 그것은 반신자유주의 시위이자 반전 시위였다.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유럽연합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50만 명이 참가했다. 이것은 작년 7월 30만 명이 참가한 제노바 시위보다도 더 큰 규모였다. 4월 16일에는 1천1백만 명이 참가한 이탈리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4월 20일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를 나타내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5월 1일 메이 데이에는 프랑스에서 1백5십만 명이 르펜 반대 시위를 벌였고, 영국 런던에서도 노동조합원들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몇 십 년 만의 최대 시위를 벌였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부시 방문을 반대하는 두 차례 시위에 각각 10만 명과 5만 명이 참가했다. 6월 20일 스페인에서는 1천만 명이 참가한 총파업이 벌어져 전국이 거의 마비됐다. 지난 7월 4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도 탈레반 붕괴 뒤 최초의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4월 초 1백만 명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인 모로코를 비롯해,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 각지에서도 반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대부분의 여론 조사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는 사실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반전 운동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 때문에 이라크 공격에 대한 의구심과 문제 제기도 커지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부시에게 도움이 됐던 정치적 합의가 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부시가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대중 운동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반전 운동은 전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지금은 대중적인 반전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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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범죄의 역사

주한미군 범죄의 역사

김정숙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피신시킨다는 핑계로 60시간 동안 총질을 해 대 노근리 주민 3백∼4백 명을 학살했다. 반세기가 지난 2000년 5월 미 공군의 오폭으로 매향리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신효순과 심미선을 잔인하게 깔아뭉갰다.

이 세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 행위로, 사건이 축소ㆍ은폐됐다. 둘째, 주한미군은 오만하게 나왔고 한국 정부는 비굴하게도 미군을 비호했다. 셋째, 불공정한 한미 관계에 바탕을 둔 협정들 때문에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

그 동안 93개의 미군 기지 주변에서 발생한 미군 범죄의 진상과 피해 상황은 끔찍하다. 미군 범죄는 일반 절도ㆍ폭행ㆍ교통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인ㆍ강간 같은 강력 범죄가 많다.

그러나 이런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한국 정부에게는 거의 없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의 재판권 행사율이 1퍼센트를 넘지 못했고 1999년 기준으로 미군 범죄에 대한 한국측 재판권 행사율은 사건 발생 건수의 3.6퍼센트뿐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소파(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 규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군은 부담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

 

점령군

1945년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한국에 들어온 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를 저질러 왔다. 1962년 6월 파주 미군 부대에서는 소파 체결에 불을 지핀 ‘파주 린치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은 고철을 줍고 있던 이길용 씨에게 “도둑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더니 발가벗긴 채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미군은 이 씨의 눈, 코, 입에 흙을 쑤셔 넣고는 그를 전신주에 거꾸로 매달았다.

1992년에 주한미군 범죄가 공론화되고 ‘주한미군범죄근절 운동본부’가 건설된 계기는 윤금이 씨 살인 사건이었다. 미군 병사 케네스 마클은 콜라병으로 윤금이 씨의 머리를 난타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윤금이 씨의 성기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았다. 그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합성세제를 윤금이 씨의 온몸에 뿌렸다.

이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처벌하라는 서명 운동에 10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규탄 시위에 2천 명이 넘게 참가했다. 결국 사건 발생 1년 6개월 만에 마클은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그는 뻔뻔스럽게도 미국 사법부에 “내 신변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내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그는 감형돼 현재 천안 소년원에 수감돼 있다.

1995년 술 취한 미군과 그의 가족이 3호선 전철에서 소란을 피우고 성추행까지 했다. 이에 항의한 조정국 씨를 미군들은 5분 넘게 발길질을 했다. 이들은 시민들의 항의로 한국 경찰에 끌려 갔지만 신문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미군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던 조정국 씨는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다.

1996년 에바다 농아원에서 수화를 통해 원생들과 친근해진 윌리엄스는 소년들을 강제 성추행했다.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그는 오히려 자기가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은폐됐고 윌리엄스는 집행유예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1997년 이태원 버거킹에서 미군 아들인 페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는 조중필 군의 가슴과 목 등을 9군데나 찔러 죽였다. 그 이유는 ‘피 보기 게임’을 하고 싶어서였다. 살해범인 페터슨은 고작 6개월 선고를 받고 8ㆍ15 특사로 사면됐다. 에드워드 리는 징역 20년 형 선고를 받았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0년 기지촌 여성인 서정만 할머니(65세)를 죽인 미군은 살인을 저지른 뒤 국제공항에서 검문이 면제되는 미군의 특수 지위를 이용해 미국으로 떠났다.

주한미군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공정한 소파에 앉아 파렴치한 범죄들을 저질러 왔다. 이런 범죄들은 한국인의 인권과 생존권을 철저히 짓밟아 왔다.

한국 권력층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안보를 지킨다”며 미군 범죄에 침묵해 왔다. <조선일보>는 여중생 압사 사건 다음날 관련 기사를 단 한 줄도 싣지 않았다. 김대중은 이번 사건을 이용해 반미 감정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군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로 저지른 10만 건이 넘는 범죄를 보면 주한미군이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은 안보 논리를 내세워 미국의 패권과 이익을 보호해 왔다. 이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연필깎이 칼로 목이 잘리고, 강간당하고, 미군 차가 한국인 운전자를 매달아 죽음의 곡예를 하는 범죄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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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한 권력자 집단은 친미적일까?

왜 남한 권력자 집단은 친미적일까?

 

강철구

이명박 서울시장은 6ㆍ13 지방선거 직전에 미국 대사관이 옛 덕수궁 터에 추진중인 직원 아파트 건립 사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며 관련법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말을 바꿨다. 이명박뿐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도 미국을 ‘맏형’ 모시듯 깍듯하게 대하며 미국 지배자들의 말에 순종한다. 남한 검찰은 두 여중생을 죽인 살인 미군들을 옹호하고, 남한 경찰은 반미 시위를 탄압한다. 남한 권력자 집단은 왜 이토록 친미적일까? 친미주의의 기원

남한 지배자들의 친미주의는 남한 자본주의가 성장해 온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남한 권력자들은 애초에 국내외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기 힘으로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었다. 36년 동안의 일본 지배가 끝나고 ‘해방 정국’이 도래하자 그 동안 극심한 착취와 억압을 받은 노동자ㆍ농민 들의 투쟁이 역사의 무대에 전면 등장했다. 좌파들의 영향력도 급속히 커졌다.

한편,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세력 확대를 위한 전장으로 변해 갔다. 남한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는 친미파로 발빠르게 변신했다. 미군정은 남한 내에서 급속히 성장하던 좌파들을 제거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 미국은 남한이 “공산화”해 그 영향력이 일본으로 번질까 봐 두려워했다. 미국은 남한을 극동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소련에 대항하는 전초 기지로 만들려고 했다. 미군정의 점령 정책은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친미 반공 세력이 정부를 수립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미군이 기층에서 자라나던 해방의 씨앗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권력 기반이 취약한 이승만 정부를 세운 것은 이런 전략적 고려 때문이었다. 냉전이 시작되고 남한과 북한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면서 남한 지배자들은 미국에 더욱 의존했고 미국은 부패한 정권을 계속 후원했다. 남한 지배자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필요성을 뼈속 깊이 절감했다. 이승만은 “미군 없이는 군사적 안보를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군작전지휘권을 미군에 넘기고 한미안보조약을 서둘러 체결했다.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박정희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야심찬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1953년 휴전 이후 1960년까지 남한은 총군사비의 80퍼센트를 미국에 의존했다. 박정희가 독자적인 자본 축적을 시작한 1961년에서 1968년 사이에 미국은 총군사비의 60퍼센트를 지원했다. 미국은 1978년까지 군사 원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남한보다 앞섰다. 미국이 남한의 안보를 담당한 덕택에 박정희는 자원을 공업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한 지배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의존했는지는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1970년에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사단을 감축한다고 통보했을 때 남한 지배자들은 펄펄 뛰었다. 박정희는 당시 주한 미대사 포터에게 “미군을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당시 총리 정일권은 “미군이 감축될 경우 내각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미군 철수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야당은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할 경우 베트남에 파견한 한국군을 불러들이고 거리에서 미군 철수 반대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남한 자본주의를 육성하기 위해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초기에는 자본과 기술 등 경제 원조도 제공했다. 그리고 줄곧 미국은 남한 상품을 소비하는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박정희는 미국의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을 남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반미와 계급 투쟁

남한 지배자들의 친미주의는 냉전이 끝나고 남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1989년 6월 미국 상원의원 6명이 1992년까지 주한미군 1만 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 남한 지배자들은 또다시 “미군 철수 불가”를 외쳤다. 노태우는 1989년 6ㆍ29 기자 회견에서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만큼 [주한미군의] 감축을 반대한다.” 하고 밝혔다. 김대중도 친미주의자이기는 마찬가지다. 김대중은 “친미가 국익”이라고 강조한다. 김대중이 미국 지배자들의 말에 고분고분하면서 반미 투쟁을 억압하는 것은 단지 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친미 행위는 정치인, 국가 관료, 기업주, 언론사 사주 등 기성 권력자 집단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남한 권력자 집단은 미국의 지원 덕택에 지금 같은 권력과 영향력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니다. 남한 자본가들도 그 과정에서 혜택을 얻는다.

또, 남한 지배자들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불안정한 한반도에서 한-미-일 공조를 튼튼히 해야 자신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들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다. 최근 중국ㆍ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지배자들이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미국 국가)은 남한 피억압 민중에게는 적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을 유혈낭자하게 짓밟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등 역대 독재 정권들을 후원해 왔다. 그들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제3세계 정부가 복지비에 사용할 수도 있는 막대한 돈을 미국 무기 구입에 사용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2000년에 주한미군 지원비가 3조 6천억 원이나 됐다. 이렇듯 같은 남한인이라도 미국 국가에 대한 이해관계는 계급에 따라 다르다. 김대중과 민주당이 자신들의 계급 기반을 떠나 미국에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친미인 남한 정부와 싸우지 않고서는 미국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다. 반미 투쟁은 지배 계급의 일부를 포함하는 “민족대단결”이 아니라 미국과 남한 지배 계급 모두에 맞서는 계급 투쟁의 방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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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보호에 열심인 한국 정부

미군 보호에 열심인 한국 정부

김광일

지난 8월 7일 주한 미군 사령부는 의정부 여중생 압사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다. 주한 미군은 “공무중 범죄에 대해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으며, 이미 기소가 이뤄진 상태”라며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57년 미군이 재판권을 이양한 적이 있었다. 1957년 1월 주일 미군 연습장 내 출입 금지 장소에서 탄피를 줍던 여성을 총으로 쏘아 죽인 미군 하사관에 대한 재판권이 일본 정부로 넘어갔다.

당시 주일 미군은 미ㆍ일 SOFA 규정을 들어 공무중 범죄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거부하다 항의 운동에 밀려 재판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철두철미하게 주한 미군을 옹호하고 있다. 재판권 포기 1차 시한인 8월 7일보다 이틀 전인 8월 5일에 검찰은 통신 장애가 사고 원인이라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매우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사실, 검찰은 현장 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미군 장갑차들이 과속을 일삼았다는 현지 주민들의 증언조차 무시했다.

국방부는 미군의 재판권 이양 거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사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미군을 거들고 나섰다.

김대중 정부는 여중생 압사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을 공격하고 있다. 6월 13일 압사 사건 이후 일어난 항의 투쟁과 관련해 10명이 넘는 학생들을 구속했다. 정부는 범대위 공동 대표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와 4명에게 출두 요구서를 발부했다. 경찰이 체포 요구서를 발부한 사람 가운데 심지어 49재 추모제 때 무대 차량을 운전한 사람도 있다.

 

항의 운동

8월 7일 미군이 재판권 이양 거부를 발표한 뒤 항의 투쟁이 주춤했다. 8월 7일 항의 집회에는 4백여 명만이 참가했다. 8월 10일 주말 집회는 서울이 아닌 의정부에서 개최됐고 참가자 수도 1백20여 명으로 줄었다. 항의 투쟁이 주춤한 주된 이유는 그 동안 여중생 압사 항의 투쟁에 적극 참가해 이 투쟁이 확대되는 데 핵심 구실을 한 한총련 간부 중 일부의 정치적 오류 때문이다.

주사파는 지난 7월 31일 북한 외무장관 백남순과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비공식 회동이 있은 뒤 형성된 남북 대화 국면을 통일 운동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모처럼 조성된 대화 국면이 깨질까 봐 매우 조심스럽다. 이런 국면에서 그들은 주한 미군 반대 투쟁이 냉전 세력들이 판을 깰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여중생 압사 항의 운동에서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사파는 8월 7일과 10일 집회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남북 대표단들이 워커힐 호텔에서 ‘8ㆍ15 민족 통일 대회’를 연 8월 15일, 용산에서 개최된 집회의 주최는 ‘의정부 여중생 범대위’가 아니라 ‘다함께’를 비롯한 3개 단체뿐이었다. 8월 15일 직전에 있은 ‘의정부 여중생 범대위’ 회의에서는 8월 15일에 ‘범대위’가 주최하는 집회를 개최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여중생 압사 사건 항의 투쟁보다 통일 운동에 무게를 두는 단체들이 난색을 표해, ‘범대위’가 집회를 주최하거나 주관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주사파 전략의 문제점은 반미 투쟁을 통일 운동과 직결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미국 정부와 대화를 모색할 때는 주사파는 반미에 일관되지 못하게 된다.

 

반미 투쟁

미국은 1990년대에만 해도 두 차례(1994년과 1998년)에 걸쳐 전쟁 위기를 조장했다. 올 6월에 벌어진 서해교전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대북 압박이 그 핵심 배경이다.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활동가들은 반미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여전히 높은 이 때가 투쟁을 확대하기에 매우 좋은 시기다.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 김동성 금메달 파동,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반감 등 반미 감정이 저변에 형성돼 있다. 8월 13일에 있은 ‘대학생 행동의 날’ 서울 집회에 1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미국과 김대중에 항의했고 8월 15일 용산 집회에도 8백여 명이라는 적잖은 수가 참가했다. 이는 반미 투쟁이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반미 투쟁은 노동자 대중과도 관계가 있다.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부시는 그것을 위해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조차 서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맞서는 투쟁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정부 여중생 항의 투쟁을 국제적인 반미 투쟁과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미국이 저지르는 범죄의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는 전쟁이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침공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1991년 제2차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과 어린이도 무참히 학살한 바 있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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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주5일 근무제를 둘러싼 갈등

김태훈

노사정위 합의가 무산된 뒤 정부가 주5일 근무제 단독 입법을 추진하자 한나라당과 기업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5천 달러가 된 후에나 실시했다”며 주5일 근무제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프랑스ㆍ스웨덴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그리스 등 대다수 나라들이 주5일 근무제 도입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 수준으로,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다. 1971년 주5일 근무를 도입한 벨기에는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도 채 안 됐다.

우리 나라 제조업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50시간씩,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오래 일한다(1999년 국제노동기구, <노동 통계 연감>). 산업재해 발생률은 미국의 67배, 타이의 갑절로 세계 1위다. 이런 끔찍한 현실 때문에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조차 2000년 총선에서 주5일 근무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활하게도 정부는 주5일 근무 법안에 노동 조건 개악을 끼워넣으려 한다. 정부는 공휴일과 생리 휴가를 무급화하고 변형 근로를 확대할 속셈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임금이 줄어든다. 흔히 노동시간 단축의 모범이라고 말하는 프랑스가 바로 그랬다. 1998년 조스팽이 이끈 사회당 정부는 사장들이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초과 근무 수당을 주지 않고도 하루 13시간씩 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게 했다. 노동시간 단축 1년 뒤인 1999년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노동자의 32퍼센트가 임금이 삭감됐다고 말했다. 33퍼센트는 노동 강도가 더 강해졌고 심지어 절반 가량의 노동자들이 토요일에도 일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임금을 보전하겠다고 하지만, 이것은 입발림말일 뿐이다. “임금을 보전한다고 해서 구체적 방법을 명시하거나 지속적으로 지급한다는 뜻은 아니다.”(노동부, <대한상의 서한문에 대한 정부 입장>)어처구니없게도 한나라당과 기업주들은 이런 정부안이 “노동계 의견만 수용했다”고 비난한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성은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느냐?”며 펄쩍 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봐 생리 휴가 폐지와 임금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법제화해서 일률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노사 자율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은 7월 1일부터 독자적으로 주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연월차 휴가를 축소했다. 심지어 한국은행은 평일에 1시간씩 더 일한다. 무엇보다, 노사 자율에 맡기면 이 나라 노동자의 90퍼센트에 가까운 미조직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진정한 주5일 근무는, 민주노총 백순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처럼, “노동 조건이 후퇴하지 않아야 하고 중소ㆍ영세ㆍ비정규직에게 혜택이 가도록 일괄 실시해야 한다.”

 

 

소리바다 폐쇄를 반대한다

한상원

7월 1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한국 음반산업협회(이하 음반협회)가 음악 파일 무료 공유 사이트 소리바다를 상대로 낸 음반 복제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했다. 7월 30일 법원이 소리바다 서버 3대를 폐쇄해 7월 31일 소리바다의 검색 서비스가 중단됐다.

법원이 음반협회가 낸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자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찬반 논쟁을 벌였다. 대다수 네티즌들이 소리바다 폐쇄에 반대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설문조사 결과, 네티즌 3만 2천4백51명 가운데 69.1퍼센트가 ‘유료화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법원의 소리바다 폐쇄 판결은 인터넷을 통한 무료 음악 파일 공유에 대한 공격의 시작이다.

그 동안 음반사들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하는 무료 음악 파일 공유 사이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윤 때문이다. 음반협회 회장 박경춘은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시작한 2000년부터 해마다 50퍼센트씩, 2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말했다.

음반협회는 소리바다가 지적 재산권을 “간접적으로 위반”해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위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음반 시장은 공정하기는커녕 불공정과 부패 투성이다. 연예 기획사 ‘에이스타스’ 대표 백남수는 MBC 피디 이성호에게 6천만 원어치의 뇌물을 바치고 <스포츠 조선> 부국장 윤태섭에게도 금품 4천만 원어치를 제공했다. 이런 식으로 상위 10개 연예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MBC, KBS, SBS 등 공중파 방송사들의 가요 프로그램에 45퍼센트 이상 출연했다.

음반협회는 지적 재산권이 가수들의 창작 욕구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수들의 창작욕을 저해하는 진정한 주범은 상업성을 앞세우는 음반사들이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음반사의 횡포에 시달린다.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은 계약해지를 신청할 경우 계약금과 투자금은 물론 ‘잔여기간 예상수익’의 3배를 소속사에 물어야 한다.

대형 음반사나 기획사들은 상업성이 없으면 무명 가수들에게 투자하지 않거니와 독점을 형성해 이들의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인디밴드 ‘슈퍼마켓’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편하게 무대 시설을 쓸 수가 없다. 열악할 뿐 아니라 비싼 시설을 빌려 공연할 때마다 너무나 힘이 든다. 소리바다로 피해를 입는 것은 그들[대형 음반사들]이지 우리가 아니다.”음악을 포함한 모든 지식과 정보는 공유돼야 한다. 음반사들의 돈벌이보다 대다수 사람들이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찰을 부러워하는가

김덕엽

경찰이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7월 31일 경찰청은 체포ㆍ연행시 수갑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를 땅에 엎드리게 한 뒤 팔을 꺾고 수갑을 채우기로 했다. 매달 실제 상황에 버금가는 총기 사용 훈련도 하기로 했다. 또, 현장에 출동할 때 형사 기동대와 112 타격대가 함께 출동해 강력 제압하기로 했다.

7월 중순 경찰은 술에 취해 사소한 시비를 벌인 사람을 강압적으로 연행하다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경찰은 그 사람을 도로에 엎드리게 해 뒤로 수갑을 채운 뒤 질질 끌고 가면서 발로 밟아 뭉갰다. 이 광경을 지켜본 2백여 명이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경찰이 그 사람을 경찰차에 태워 연행하려 하자 항의하던 사람들은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항의자들 중 한 명을 연행했고 연행당한 두 사람은 파출소에서 구타당했다. 사당 2파출소 부소장 김형환은 “시민들이 군중심리 때문에 흥분했다.”며 비난했지만 파출소 CC-TV 테이프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사건 며칠 뒤 경찰청은 경찰력에 도전하는 모든 행위를 사법 처리키로 했다. 그 뒤 경찰은 경찰력 침해 사범으로 하루 평균 40여 명을 사법처리하고 있다(<내일신문> 7월 31일치).

경찰은 “경미한 범죄의 경우 현행범이라도 주거가 분명하지 않을 때만 체포할 수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을 문제삼으며 “체포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경찰은 체포ㆍ연행시 법 절차를 무시해 왔다. 경찰은 6월 19일 체포영장도 없이 부산 지방노동청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했다. 최근에는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얼마 전에는 1997년에 경찰이 술자리에서 작은 시비를 벌이던 30대 회사원을 연행해 집단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기도 했다. 폭행당한 사람은 후유증으로 직장을 그만뒀지만 경찰은 피해 보상은커녕 사건을 은폐ㆍ축소하기 위해 피해자를 협박했다(<시민의 신문>, 2002년 2월 4일치).

“인권을 존중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경찰 서비스 헌장은 언제나 사기일 뿐이다.

 

 

 

□ 지난호 기사 ‘죽음을 거래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글리벡 제조회사는 미국계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아니라 스위스계 노바티스입니다.

□ 지난호 기사 ‘미군에게만 편안한 소파’에서 미군의 경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한국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소권은 없어 제한적입니다.

입력 2002-09-01 ⓒ레프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