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 준 토론회
월간 <다함께> 16호 | 발행 2002-09-01 | 입력 2002-09-01
진보 정당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 준 토론회
김용석
지난 8월 12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가 각 당의 학생 조직자들을 초청해 대선 토론회를 열었다. 한나라당의 사이버 대변인 곽호성, 사회당 학생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영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준) 공동위원장 김인식 씨가 연사로 참여했다. 대선을 앞둔 토론회인만큼 사회적 쟁점이 됐던 장상 논란, 공기업 사유화,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대북 문제 등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었다.
학생 조직자들이 참석한 토론회였지만, 이 날 토론은 각 당의 이념과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 줬다.
토론의 모두 발언에서 한나라당의 곽호성은 가장 보수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를 칭송하며, “자생적 질서(시장 질서)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는 정당”이 한나라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 운영을 할 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반대로, 김인식 씨는 “김대중의 정책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실업이 1백만 명으로 늘었고 노동자들 가운데 60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의 빈부격차는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또, 그는 “이런 김대중 정부조차 사회주의적 정부라고 공격”하는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그들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 하고 주장해 토론 시작부터 격론을 예고했다.
토론 과정에서 한나라당 연사는 국가보안법, 서해교전, 대북 지원 등의 주제에서 일관되게 북한을 문제 삼는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은 서해교전 문제에서 “주적은 북한이며 … NLL은 바다의 휴전선”이라며 그것이 북한의 침략임을 분명히 했다. 또, “국가보안법은 유지되어야” 하고 “대북 경제 지원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대북 상호주의를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로 북한을 들었지만, 이 날은 민주노동당의 전지윤 씨가 북한과 무관한 병역 비리와 언론 개혁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돼 선고 재판을 받는 날이었다.
김인식 씨는 “국가보안법은 행동 이전에 말과 주장만으로도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이 문제”라며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를 사회당과 함께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현 국가보안법과 오십보 백보인 민주당의 민주질서수호법조차 반대하는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서해 교전은 “한반도가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며,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이용해 확전을 부추기는 위험한 냉전 세력”을 비판했다. 그는 “1953년 7월 7일 정전협정에는 문제가 되고 있는 NLL에 관한 규정은 없다. 북방한계선은 미국이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북침을 방지하기 위해 임의로 그어 놓은 선일 뿐”이라며 서해 교전이 남침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상호주의에 대해 “주한미군에게는 주둔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주둔비의 70퍼센트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일방적인 퍼주기 정책을 펴고 있는데, 미국에 대해서는 왜 상호주의를 주장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여중생 살해 문제에 관해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6월 30일 한나라당이 발표한 성명서는 미국을 비판하기보다는 “진상을 규명해 의혹을 풀고 … 오랫동안 깊이 쌓아 온 한ㆍ미 우호관계가 더욱 성숙ㆍ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 날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연사가 사회당ㆍ민주노동당 연사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쟁점은 공기업 사유화 문제였다.
한나라당 연사는 “민영화는 대세”이고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때문에 사유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리 해고 반대와 사유화 반대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면서 “공기업이 민영화되지 않을 경우 외국 자본이 투자하지 않고 한국을 떠날 텐데, 그러면 그 경제적 손실이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뜨거운 쟁점이 된 발전소 사유화에 대해 국민의 81퍼센트가 반대하고 14.6퍼센트만이 찬성했다. 한나라당은 14.6퍼센트의 찬성을 대세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김인식 씨는 “공기업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방만한 경영은 주로 공기업 경영자들에 의한 것”이라며, “이 책임을 왜 노동자들이 져야 하는가?” 하고 반박했다. 또, “공기업이 사유화되면 정리 해고와 각종 사고가 증가한다. 이윤이 남지 않는 곳에는 사장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며 이미 사유화된 기업도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연사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민주노동당이 사회당을 비판한 글을 뽑아 와 두 당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
이 날 토론에서 사회당과 민주노동당 연사들은 몇몇 쟁점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함께 공격했다. 이 날 토론이 보여 주었듯이,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부자들의 정당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당 연사는 게시판의 비판 글이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고, 민주노동당 연사도 사회당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답변해 한나라당의 분열 시도를 통쾌하게 좌절시켰다.
민주당은 “신당 창당 논의로 인해 당명을 걸고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토론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재보선 이후 분열하고 있는 민주당의 현 주소를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이번 대선 토론회는 한나라당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ㆍ사회당 같은 진보 정당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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